내게 웨지는 그야말로 애증의 아이템이다. 웨지 하나를 방 한 구석에 세워 놓고 산다. 10년 전 쯤 누군가가 자긴 쓰지 않게 됐는데 필요하면 가져가라 해서 필요하지도 않는데 챙겨온 클럽이다. 로프트 53도짜리인데 지금까지 실전에서 써본 적도 없다. 피칭 48도, 웨지 52·56도 구성이라 53도를 쓸 일이 없다. 잠들기 전 거실로 들고 나와 몇 번 휘둘러보는 용도다. 주로 요즘 연습장을 너무 안 갔다는 죄책감이 들 때 그렇게 한다. 며칠 간 출장을 가야 할 때 아내에게 쥐어주기도 한다. “수상한 사람이 초인종 누르면 이걸 방망이처럼 들고 나가봐.”
짧아서 만만한데 막상 필드 나가면 가장 애를 먹이는 클럽이기도 하다. 핀이 코앞인데도 볼 허리를 치는 바람에 반대편 그린 밖으로 훌쩍 넘어가 버리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볼이 맥 없이 제자리에 떨어지는 ‘철퍼덕’은 더 싫다. ‘올핸 스코어 앞자리를 바꿔보자’던 굳센 각오마저 무뎌지게 만든다.
그러던 중 수도권에 웨지 전문 피팅 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TFC 솔트베이’다.
디봇 모양만 보고도 족집게 진단
TFC는 타이틀리스트 피팅 센터의 약자. TFC 솔트베이는 서울 도산·한남·코엑스·잠실과 수원·광주·부산·오크밸리에 이어 국내 9번째로 문을 열었다.
위치는 경기 시흥 솔트베이GC 바로 옆. 솔트베이 연습장 2층 한편에 드라이버와 아이언 피팅 시설이 있고 볼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저 멀리 벙커 등 쇼트 게임 연습장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웨지 피팅장이다.
드라이빙 레인지의 잔디 타석에서 웨지 피팅이 이뤄지는 TFC는 TFC 솔트베이가 국내 유일하다. 잔디 위에서 풀 스윙으로 점검을 받은 후 타석 뒤쪽 쇼트 게임장에서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과 벙커 샷까지 점검하는 식으로 ‘필드형 환경’의 피팅이 이뤄졌다.
전문가나 골프 고수들이 피팅을 선택 아닌 필수라고 권하는 이유는 클럽을 가장 잘 아는 사람과 ‘증거’를 보고 대화하며 내게 가장 잘 맞는 클럽 스펙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등 롱게임 클럽 피팅도 중요하지만 웨지 피팅은 90대 초중반이나 그 이상 스코어를 내는 주말 골퍼라면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그린 주변에서 타수를 지키는 능력에서 고수와 실력 차이가 가장 큰 만큼 내게 꼭 맞는 스펙의 웨지를 갖춰야만 실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팅 첫 단계인 피칭 웨지 풀 샷 때부터 ‘개안’을 경험했다. 내게 배정된 피터는 두세 번 샷 만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책을 제안하는 것 아닌가. 평소 나는 로프트 48도의 피칭 웨지 거리로 100m를 보고 있었지만 필드에서는 거리가 조금 모자라는 느낌이 있고 오른쪽으로 약간 밀리는 현상도 잦았다. 그래도 초집중 상황에서 똑바로 100m를 보냈던 기억에 붙들려 클럽 스펙에 변화가 필요하단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제공된 48도 클럽으로 몇 차례 풀 샷을 했으나 역시 100m에 미치지 못했고 오른쪽으로 밀리는 샷도 있었다. 피터는 디봇(잔디의 팬 자국)만 보고도 대번에 문제점을 찾아냈다. “이상적인 샷은 균일한 깊이의 직사각형 형태 디봇을 만드는데 고객님의 디봇은 부채꼴에 가깝죠. 헤드 페이스의 중심보다 토 쪽으로 임팩트가 된다는 증거죠. 상당수 주말 골퍼들이 이렇긴 해요. 거리 손해와 오른쪽으로 가는 샷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피터는 뚝딱 하고 손을 보더니 “일단 라이각을 좀 세워봤는데 한 번 쳐보라”고 했다. 놀라울 만큼 똑바로 가는 기분이었고 피터도 흡족해 하는 표정. “2도만 업라이트하게 라이각을 세웠는데 확실히 잘 맞네요.” 거리는 여전히 좀 짧아서 로프트 46도 클럽으로 쳐봤더니 이제야 마음에 드는 거리와 탄도가 나온다.
찾았다! 뒤땅 처방전 ‘12도 바운스’
타이틀리스트 보키 웨지의 그라인드는 6가지나 된다. T·M·F·S·D·K다. 똑같은 바운스각이라도 솔의 갈린 모양인 그라인드에 따라 강점이 다 다르다. T와 M은 단단한 잔디에 쓰임새가 좋고 디봇이 얇은 골퍼에게 적합한 모델이다. F와 S는 일반적인 잔디와 적당한 디봇용, D와 K는 소프트한 잔디에서 자주 치고 깊은 디봇을 내는 골퍼에게 알맞은 모델이다. 최신 보키 웨지인 SM10은 총 27가지에 이르는 로프트·그라인드·바운스 조합을 갖춰 다양한 스윙 스타일과 코스 컨디션에 따라 최적의 웨지를 선택할 수 있다.
로프트 52도와 56도 웨지 피팅에 앞서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오히려 내게 딱 맞는 스펙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택지는 아주 빠르고 명쾌하게 좁혀졌다.
52도로 80m, 56도로 60m를 보고 풀 샷을 하는 상황이 잦기에 풀 스윙 샷을 구사하고자 하는 골퍼에게 가장 적합한 F 그라인드가 기본값으로 나왔다. 52도 웨지의 바운스각은 미드 바운스인 8도와 하이 바운스인 12도 사이의 선택이었다. 몇 차례 쳐보니 12도 바운스가 확실히 구질과 탄도, 스핀양 면에서 더 만족스러웠다. 디봇의 모양도 일관된 편이었고 무엇보다 손맛이 더 좋았다.
“바운스는 클럽이 지면에 파고들었을 때 잘 빠져나가도록 도와서 볼이 날아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숫자가 클수록 빠져나가도록 돕는 능력이 더 높아진다고 보면 되는데요. 쉽게 말하면 숫자가 낮은 건 ‘삽’의 형태, 높은 건 ‘숟가락’ 형태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삽이면 더 많이, 쉽게 파고들겠죠? ‘V자형’ 스윙으로 디봇을 깊게 내는 선수일수록 클럽이 빠져나가는 능력이 더 커야 하니까 바운스가 비교적 높은 게 좋겠고 얇게 치는 분들은 클럽이 파고 들어가는 양이 유지돼야 하니까 일반적인 바운스나 로 바운스가 좋을 수 있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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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 약간 뒤땅이 날 때가 많고 그럴 때 큰 바운스가 미스 샷 확률을 줄여줘 확실히 12도 바운스가 편했다. 반대로 볼 윗부분을 치는 토핑이 잦은 골퍼에게는 미드 바운스를 추천한다.
벙커 샷용으로도 많이 쓰는 56도 웨지로는 바운스각 10도에 S 그라인드를 추천 받았다. 솔 면적이 가장 넓어 반발력이 좋은 K 그라인드가 벙커 샷을 할 때 특히 유용하지만 어드레스 때 정렬이 가장 잘 나오는 S 그라인드가 나한테는 잔디와 벙커 상황에서 모두 더 잘 맞았다. 52도와 56도 웨지도 2도만큼 업라이트하게 라이각을 조정 받았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와 벙커 샷 테스트 땐 전문 교습가한테 받는 것처럼 원포인트 레슨도 받았다. 내 경우 지나친 핸드 포워드 자세가 정상적인 캐리를 방해하고 있었다. ‘피팅을 받으러 와서 레슨을 받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푸념하자 피터는 이렇게 말했다. “레슨이라기보다 피팅한 클럽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드리는 거니까요. 부담 없이 편하게 들으시면 됩니다.”
‘2번 우드’ GT280의 매력
요즘 제일 핫하다는 미니 드라이버도 쳐봤다. 솔트베이 연습장 2층 한편에 마련된 피팅 시설에서 뻥 뚫린 실외로 티샷을 쳐보고 바닥에 내려놓고도 쳐봤다.
타이틀리스트의 미니 드라이버 이름은 GT280. 주요 브랜드의 미니 드라이버 중 헤드 체적이 가장 작은 280㏄다. 드라이버의 비거리와 페어웨이 우드의 컨트롤을 하나로 결합한 메탈 클럽이라는 설명. GT 드라이버와 페어웨이 우드 사이에 위치한 독자적인 스펙으로 비거리와 관용성은 유지하면서 보다 유연한 컨트롤 성능을 제공한다고 한다. 피팅 데이터 화면엔 ‘2번 우드’로 표기됐다. 좁은 페어웨이 등 특정 환경에서 전략적 티샷을 할 때나 긴 파5 홀에서 세컨드 샷을 더 정확하고 멀리 보내려 할 때 요긴하다.
처음 쳐볼 땐 발사각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볼이 덜 떴다. 이후 피터가 무게추를 뒤쪽으로 더 배분하자 볼이 뜨기 시작했다. 그다음 타이틀리스트만의 미세 조정 시스템인 슈어핏을 통해 로프트를 올리고 라이각을 약간 플랫하게 조정하니 왼쪽으로 휘던 구질도 눈에 띄게 펴졌다.
여기서 한 번 더 조정이 들어갔다. “힘 전달력인 스매시 팩터를 좀 더 올릴 여지가 있다고 봐서 로프트는 13도로 두고 라이각만 0.75도 더 플랫하게 조정했더니 스매시 팩터가 올라가면서 볼 스피드도 시속 128.5마일에서 131마일로 향상했다”는 설명이다.
타이틀리스트는 볼 스피드에 따른 이상적인 발사각과 스핀양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 볼 스피드를 기준으로 최적의 발사각과 스핀양을 조합해 이상적인 볼 비행을 만드는 게 타이틀리스트 피팅의 궁극적인 목표다.
드라이버 티샷 거리와 비교해 거리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데 컨트롤이 어렵지 않고 방향성은 확실히 좋으니 고정 수요가 탄탄할 거란 생각이다. GT280의 ‘킥’은 앞뒤 무게조절 기능이다. 기본 세팅은 11g 무게추가 뒤쪽에, 3g 무게추가 앞쪽에 배치돼있는데 내 경우처럼 뒤에 무게를 더 실을 수도 있고 반대로 조정하면 낮은 탄도와 낮은 스핀의 강한 구질을 구현할 수 있다. 헤드가 크지 않은 데다 페이스 하단까지 감싸는 L컵 페이스 형태로 솔 부분이 평평해 페어웨이나 러프에서 칠 때도 안정감을 줄 만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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