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경기 둔화에 미국발 관세전쟁의 여파가 겹치면서 IBK기업은행의 연간 중소기업 대출 목표액이 다음 달 채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들이 밸류업을 위해 위험가중자산(RWA)을 관리하면서 중기 대출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기업은행이 중기 대출을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는 만큼 하반기 들어 ‘대출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계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의 중기 대출 누적 증가액은 이달 말 기준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은 올해 연간 중기 대출 증가 목표액을 12조 원으로 설정해뒀는데 반 년이 채 안 된 시점에 83%가량 집행되는 셈이다. 은행 안팎에서는 이 같은 추세라면 다음 달 내 연간 목표치만큼의 중기 대출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관계자는 “기업은행 대출 증가액의 상당 부분은 시중은행 대출을 받은 이들이 옮겨 탄 것”이라며 “시중은행들이 중기 대출을 죄자 그나마 대출 문이 열려 있는 기업은행으로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중기 대출 잔액은 올 들어 이달 22일까지 2175억 원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시중은행이 신규 중기 대출을 거절하거나 기존 대출금리를 높이는 식으로 고객을 줄여나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재작년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시중은행들이 중기 대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올 하반기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중기 대출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은 △주주 환원 △원·달러 환율 상승 △경기 침체 등이 주요 원인이다. 4대 금융그룹의 경우 주주들에게 약속한 주주 환원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위험 가중치가 높은 중기 대출을 적정 수준에서 내줄 필요가 있다. ‘중기 대출 확대→위험 가중치 상승→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주주 환원 여력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원·달러 환율이 크게 출렁이면서 대출 여력이 줄어든 것도 부담이다. 환율이 올라가면 은행이 가진 외화 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진다. 장부상 위험자산이 늘어나면 은행의 핵심 재무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끌어내린다. 은행 입장에서는 재무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떼일 위험이 큰 중기 대출이나 개인사업자 대출부터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에 중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점 또한 문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연체율은 3월 말 현재 0.76%로 2023년 3월(0.41%)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보험과 카드사 같은 2금융권 연체율 역시 오름세여서 금융권 전반의 부실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0.8% 안팎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지금 중기 대출을 늘리면 건전성 관리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담보 중심의 대출에 집중하고 있다”며 “환율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RWA를 관리하고 밸류업도 신경 쓰려면 중기 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기업은행이 중기 대출을 계속 늘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연간 대출 목표액 이상으로 대출을 일부 취급할 수는 있지만 위험 부담이 큰 중기 대출을 늘릴수록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는 것은 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6·3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책은행을 통한 자금 지원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변수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목표액을 초과해 대출을 늘리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코로나19 펜데믹 때 금융지원을 대폭 늘렸던 것처럼 필요 시 대출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을 확대하기 위해 건전성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은행 건전성 규제는 국제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만큼 섣불리 손대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은행 대출 여력을 일거에 늘리는 식의 규제 완화는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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