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역대 최고치를 찍은 쌀값을 필두로 급등하는 내수 물가와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를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까지 지지부진하면서 이시바 내각의 정치적 방어선이 위협받는 모양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21일 의회에서 열린 여야 당수 토론에서 "쌀은 (5kg 기준) 3000엔 대여야 한다"며 실현되지 않을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성의 지난 5~11일 조사에서 전국 슈퍼의 쌀 5kg 평균 가격은 전년보다 2배 오른 4268엔(약 4만 845원)이었다. 쌀값이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3000엔 대에 진입하려면 최소 6.3% 가량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이시바 총리의 이례적인 공언은 최근 급등한 쌀 가격이 진정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쌀 관련 실언을 한 에토 다쿠 농림수산상에 대한 비판도 이시바 총리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토 농림수산상은 지난 18일 사가현에서 열린 집권 자민당 정치자금 행사에서 비축미와 관련해 발언하다가 "저는 쌀은 산 적이 없다. 지원자분들이 많이 주신다. 집에 팔 정도로 있다"고 말해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샀다.
국회 말기 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농정 개혁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잇따른다. 일본은 오랫동안 쌀 생산량 증가 억제 정책을 펴왔으며 현재도 쌀 농가가 보리나 대두, 사료용 쌀로 작물을 전환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쌀 정책 방향을 증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야당 의원 주장에도 동의한다고 밝혔으나 자민당이 쌀값 인하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타니 료헤이 일본유신회 간사장은 "현재 자민당 체질로는 JA(농협협동조합) 개혁을 포함한 구조적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농업 및 농협 세력과 긴말한 관계를 유지해온 자민당이 당내 이해관계와 정치적 균형을 깨뜨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아울러 '이시바노믹스'로 불리는 경제 활성화 대책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과 임금 인상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탈피를 추구하는 이시바노믹스는 가파른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신호로 난관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 이렇다 할 외교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도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제2차 미일 관세 협상에서 일본은 자동차 관세를 포함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상호관세만을 논의 대상으로 고수하며 커다란 입장차를 보였다. 이가운데 지난달 일본차 대미 수출단가는 전년 동월 대비 15% 하락한 407만 엔(약 3900만 원)으로 떨어졌다. 닛케이는 "관세 인상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보다는 제조업체가 흡수한 상황"이라며 "일본 기업들이 관세 인상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짚었다.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가 관세의 주 타깃이 되면서 일본 정부가 예상했던 기초재정수지 흑자 달성도 최소 1년 늦어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국가·지방의 기초재정수지 흑자 목표 시기를 당초 2025회계연도에서 2025~2026회계연도로 조정했다. 트럼프 관세 충격을 줄이기 위해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할 경우 흑자 달성은 더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기초재정수지는 1991년 10조 7000억 엔(약 103조 원) 흑자를 낸 이후 34년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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