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투자자들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달까지 9개월 연속 사들이는 가운데, 특히 관세 쇼크로 변동성이 컸던 지난달 5년 1개월 만에 최대 순매수로 국내 증시를 떠받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이달 들어서도 이어지면서 등 돌린 외국인투자가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다만 ‘큰손’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 대비 국내 주식 비중은 여전히 목표치를 밑돌고 있는 데다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어서 ‘증시 구원투수’ 역할론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 달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2조 3501억 원을 순매수했다. 지난 2020년 3월(3조 286억 원) 이후 최대 규모다. 연기금은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연속 국내 증시에서 매수 우위를 보이며 약 12조 원을 쓸어담았다. 이달 들어서도 4거래일 만에 1202억 원을 사들이며 ‘셀코리아’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외국인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 달 관세발(發) 경기 둔화 우려,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국내 증시가 큰 폭으로 흔들렸을 때도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가며 버팀목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 연기금은 코스피가 5% 이상 급락한 4월 7일에만 4310억 원 가량을 사들이며 추가적인 하락을 방어했다.
연기금이 순매수 기조를 유지하는 배경은 국내 증시 저평가 문제가 꼽힌다.지난해 하반기 내내 국내 증시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인공지능(AI) 고점 논란,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내리막을 걸으며 미국 등 해외 주식 대비 가치가 낮아지면서 저가 매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서는 조선, 방산 등이 주도주로 급부상해 종목별로 접근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지수는 빠져도 조선, 방산 등 미국에서는 소외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종목이 국내 증시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개별 종목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보완하는 전략으로 매수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연기금이 자산 배분 전략에 따라 국내 주식 비중을 다시 높여야 하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올해 2월 기준 전체 자산 대비 국내 주식 비중은 12.5%다. 지난해 연말(11.5%)보다 소폭 늘었지만 여전히 목표치(14.9%)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국내 증시에서 약 20조 원 이상 사들일 여력이 있는 셈이다.
문제는 2021년 이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이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는 2029년까지 국내 주식 비중을 13%까지 낮추겠다고 알려진 가운데 이달 중 중기자산배분안을 수립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급격하게 줄이게 되면 시장에선 ‘국장에 미련이 없다’는 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준서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수익성 측면을 고려했을 때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고 해외 주식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국민연금 운영 목표에 공공성이 있는 만큼 국내 증시 방어를 위해 기본적으로 국내 주식 비중을 14% 정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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