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가진 첫 번째 정례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고강도 관세정책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한동안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했으며 이대로면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7일(현지 시간) 연준은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4.25~4.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올 들어 3연속 동결이다. 이로써 한국과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 1.75%포인트를 유지했다. 연준은 1월 이후 관세정책으로 인한 물가 상승 위험과 경기 둔화 가능성이 공존하는 만큼 경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 결정 역시 이런 기조를 반영한 결과다. 금리 선물 시장은 앞서 이날 기준금리가 동결될 확률을 97%로 보고 있었다.
주목할 대목은 연준이 관세정책에 따른 경제 충격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파월 의장은 “지금까지 발표된 관세 인상 조치들은 예상보다 상당히 큰 규모였다”며 “발표된 대규모 관세 인상이 유지된다면 인플레이션 상승과 경제성장 둔화, 실업률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고용 증가와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위험이 모두 커졌다”며 “물론 이는 (직전 회의였던) 3월과 비교한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면서 경제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고 논평했다.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파월 의장은 ‘연착륙이 가능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발표된 범위와 규모대로 관세가 시행된다면 지금까지 이뤄온 인플레이션과 고용 성과에서 추가적인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1년 정도는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내 직감상 향후 경제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졌다”고도 말했다.
이를 두고 월가에서는 사실상 파월 의장의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자니몽고메리스콧의 수석 채권 전략가 가이 르바스는 “연준이 성장과 인플레이션 위험이 동시에 커졌다고 이처럼 뚜렷하게 이야기한 사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연준의 이 같은 경제 전망을 고려하면 6월 금리 인하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파월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단행했던 이른바 ‘선제적 금리 인하’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파월 의장은 중국과의 첫 번째 무역전쟁을 맞아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내렸다. 파월 의장은 “당시에는 인플레이션이 1.6% 수준이었지만 물가가 목표치를 넘은 지 이미 4년째”라며 “무엇이 올바른 대응인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데이터조차 확보하지 못했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월가는 적어도 상반기, 길어질 경우 올해 말까지 연준의 금리 인하가 없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BNP파리바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임스 에겔호프는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과 이에 따른 경기 둔화가 상쇄 작용을 하면서 연준이 당분간 동결 기조를 유지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며 연내 금리 동결 전망에 힘을 실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제지표의 변동을 확인한 뒤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연준의 기조가 오히려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의 미국 거시 전략 책임자인 조지 곤칼베스는 “금리 동결 기간이 길어질수록 결과적으로 연준은 긴축을 강화하는 셈”이라며 “7월 또는 9월까지 금리 인하를 기다릴 경우 나중에 0.5%포인트의 빅컷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시장의 우려가 증폭되자 이날 상승 출발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파월 의장의 기자 회견 중 마이너스로 돌아서기도 했다. 증시는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규제 완화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상승 마감했다.
한편 파월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 인하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관련해 “그것이 우리의 업무 수행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어떤 대통령과의 회동도 요청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리 동결 소식에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너무 늦는' 제롬 파월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석유와 에너지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사실상 인플레이션은 없다"며 "관세로 인해 돈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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