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5’의 최대 화두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었다. 월가와 경제학계의 글로벌 빅샷들은 예측할 수 없는 관세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경제 위상이 흔들리는 반면 유럽과 중동의 투자 매력이 상승하는 등 글로벌 시장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우리는 ‘공정한 무역’이라는 개념이 약화된 세계에 살고 있으며 세계가 치러야 할 비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선진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대규모 공급 충격(Severe supply shock)이 발생할 것이고 그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관세로 인해 해외 수입이 막혀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는 “관세가 10% 수준이라면 고객들은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며 “하지만 25%라면 완전히 다른 성격의 반응과 시장 역학이 촉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실질 관세율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 2.5%에서 현재 25%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관세 수준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관세로 인한 고통이 경제의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부터 타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케이티 코치 TCW그룹 CEO는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는 사실상 무역 봉쇄”라며 “중소기업들은 공급망을 유연하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취약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미국 고용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세가 미국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경기 침체 우려도 이어졌다. 코치 CEO는 “지금 불확실한 하루하루는 기업들이 지출 결정도, 인수합병(M&A)도, 투자도 전부 미뤄지고 있는 시간”이라며 “불확실성이 하루 더 늘어날수록 경기 침체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렌 카르니올탬버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반드시 전면적 경기 침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글로벌 경제 둔화는 이미 완전히 예정돼 있다”고 봤다.
월가 관계자들도 관세로 인한 경기 둔화 가능성은 공감했지만 침체에 대한 견해는 엇갈렸다. 안드레 에스테베스 BTG팩추얼 CEO는 “경기 침체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과도하게 부각됐다”며 “불확실성의 시기일 뿐 진짜 침체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여파로 인한 글로벌 자금 흐름의 변동을 주목하는 분위기는 뚜렷하게 감지됐다. 월가는 유럽의 부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헤지펀드 KKR의 공동창립자인 헨리 크래비스는 독일이 1조 달러 규모의 국방 및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킨 점을 언급하며 “독일은 더 이상 미국에 미래를 의존할 수 없으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유럽이 지금 진짜 기회의 땅이라고 보고 있고, 거의 매달 유럽에 간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한 대(對)중국 정책과 중국의 맞대응이 거칠게 부딪치면서 이르면 내년께 대만 위기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임기 안에 대만 위기(Taiwan Crisis)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퍼거슨 선임연구원은 경제적 거래를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으로 볼 때 대만을 위해 무력 충돌을 벌이는 모험을 감내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이러한 성향을 간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압박이 거세질 경우 대만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미국의 전략적 양보를 받아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퍼거슨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대응은 대만 침공이나 봉쇄 같은 (군사적) 방식은 아닐 것”이라며 “해안경비대를 대만 해역으로 보내 ‘대만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는 중국 세관을 거쳐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트럼프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시 주석은 내년이나 내후년께 트럼프에게 대만을 위해 해전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대만과 TSMC를 (중국에) 넘길 것인지 양자택일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로서는 매우 불쾌한 딜레마지만 트럼프 임기 중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관세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향후 2주 이내에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 다른 나라들에 우리는 매우 불공정하게 갈취당하고 있다”며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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