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인공지능(AI) 공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I는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끄는 동시에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어 한국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중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 주요국은 AI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AI 공약을 내세우며 AI 정책을 이끌 적임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공약을 정리했다.(지난달 28~30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지지율 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선 주자 중 가장 먼저 구체적인 AI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1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1호 공약’으로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고 'AI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글을 올린 뒤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AI를 방문해 업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재명 후보는 AI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AI 핵심 자산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소 5만 개 이상 확보하고 AI 전용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과 실증을 적극 지원해 기술 주권을 확보하겠다”며 “기업의 연구 개발 지원을 위한 공공 데이터도 민간에 적극 개방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AI 생태계 조성 계획도 제시했다. 모든 국민이 선진국 수준의 A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소개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른바 ‘한국형 챗GPT’를 전 국민이 사용한다면 순식간에 수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며 “이는 다른 산업과의 융합, 생산성 혁신, 신산업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AI 산업융합을 주도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는 “AI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노동시간이 줄면 ‘워라밸’이 가능한 AI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AI로 금융·건강·식량·재난 리스크를 분석해 국민의 삶을 지키는 ‘AI 기본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재명 후보는 AI 산업 생태계 조성 관련법, 특허법, 출입국관리법 등의 규제 특례를 적용받는 'AI 특구'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AI 인재 육성 정책도 공개했다. △AI를 위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강화 △지역별 거점대학에 AI 단과대학 설립 △AI 분야 우수 인재의 병역특례 확대 △해외 인재 유치 △제조업·정보통신기술(ICT)·뷰티산업·방위산업 등과 연계한 융복합 인재육성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AI 성패는 사람의 역량에 달렸다”며 “우리는 가난한 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세계 10대 경제강국 대열에 올랐다. 양적 성장만 보고 달리느라 빼먹은 것을 채워야 할 시기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AI 관련 거버넌스 강화 방안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강화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기술자, 연구자, 투자기업과 정부의 협력을 살필 것”이라며 “국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해 글로벌 AI 허브의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명 후보는 글로벌 협력 방안도 소개했다. 그는 “국제협력으로 글로벌 AI 이니셔티브를 확보하겠다. 글로벌 AI 공동투자기금을 조성하고 협력국 공용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며 “태평양, 인도, 중동 국가까지 협력을 확대하면 (협력망에 들어오는) 디지털 인구가 10억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명 후보는 인프라, 인재,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구체적인 AI 공약을 발표하며 정책 이슈를 선점했다. 장병탁 민주당 AI강국위원회 공동대표(서울대 AI연구원장), 김준하 부위원장(광주과학기술원 교수), 구현모 상임고문(전 KT(030200) 대표), 윤석진 분과위원장(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등도 이재명 후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이 후보의 싱크탱크인 AI강국위원회에는 이경일 솔트룩스(304100) 대표, 김우승 크라우드웍스 대표와 신진우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석좌교수 등이 참여 중이다.
다만 100조 원 투자 관련해 재원 조달 방안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모두의 AI’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4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당시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무지하면 공공, 무료, 무조건 투자만 외치는 것”이라며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개발한) 경기도 공공앱은 불편한 사용성과 낮은 경쟁력으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양향자 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달 19일 경선 토론회에서 “이 후보의 공약은 빈깡통이다. 한국형 챗GPT 전국민 무료제공. 무료버전이 있는데 왜 또 만드냐”며 이 후보의 공약이 적힌 종이를 찢었다.
이달 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는 아직 AI 관련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한 후보는 출마 선언 8일 전인 지난달 24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자격 당시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정부의 AI 정책을 설명한 바 있다. 권한대행 시절 시정연설은 정부의 입장을 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한 후보의 공약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책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평가다. 한 후보는 당시 “AI의 연산과 학습에 필수적인 고성능 GPU를 연내 1만 장 확보하겠다”며 “AI 분야의 석·박사급 인재를 2배 확대된 총 3300여 명을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한 후보는 이어 “우수한 민간 AI 기업들로 구성된 ‘AI 국가대표 정예팀’을 선발해 챗GPT와 같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하겠다”며 “이를 위해 GPU, 데이터 등 연구 자원을 집중 지원하는 ‘월드 베스트 LLM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한 후보는 “AI 분야 유망 중소·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는 AI 혁신 펀드도 9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18일 AI 3대 강국 육성을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 AI 유니콘 기업 지원을 위해 1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AI 청년 인재 20만 명 양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권역별 AI 융합지원센터 구축 △AI 기반 청년 스타트업 빌리지를 전국 광역자치단체에 조성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등 AI 활용 교육 확대 △AI 응용 선도 기술로 산업 고도화 지원 등 생태계 강화 정책도 제시했다.
김 후보는 AI 정책 보좌관 신설 및 민간 전문가 임명 등 거버넌스 구축도 약속했다. 김 후보는 과학기술부총리를 신설하고 과학기술 연구개발 관련 예산과 조직을 통합해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과학특임대사를 신설해 국제 과학기술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나 단계별 계획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AI 유니콘 기업 지원을 위한 100조 원 투자에 대해서도 재원 조달 방식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 고용노동주 장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AI가 초래할 노동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정책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 의원은 지난달 19일 경선 토론회에서 김 후보에게 “AI 투자를 늘린다는데 어디에 투자한다는거냐”고 질문하자 김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안 후보처럼 AI를 잘 알고 관심 있는 분을 정부 위원장으로 모셔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뒷받침하겠다”고 답했다. 또 안 의원이 “AI 잘 모르시죠”라고 말하자 김 후보는 “안 후보만큼은 모르지만 챗GPT와 퍼플렉시티도 쓴다”며 “인재도 20만 명 양성하고 추진위원회도 안 후보 같은 분 모셔서 하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민간 중심의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관련 규제를 푼다는 방침이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달 25일 안 의원과의 대담에서 “돈을 100조 넣겠다, 200조 넣겠다 이런 피상적인 이야기로 가서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윤리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도 느슨해서도 안 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토론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켜 AI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포항 데이터센터 유치를 약속했다.
이준석 후보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AI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AI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은 지난달 30일 2030년까지 GPU를 포함한 최첨단 NPU 50만 장 규모의 세계 5위 성능의 대규모 AI 컴퓨팅 파운데이션을 구축할 것을 제안하고 세계적 수준 오픈소스 AI 생태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AI 정책연구소 설립, 전담 부처 혹은 대통령실 내 AI수석 신설, AI 안보연구소 확대 등 거버넌스를 개편하고 글로벌 AI 협력 및 AI 안보 강화에도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2030년까지 세계 2000명 내 5% 이상 포함되는 글로벌 AI 연구자 육성을 진행하고, 이를 위해 AI 분야 병역특례 규모 확대, AI 전문사관 도입도 주문했다. 공공분야 AI 적용 확산, 지역거점 대학과 과학기술원 AI 기술협력 체계 마련, 국산 NPU 도입, 지역별 AI 규제샌드박스 도입 등 생태계 성장 관점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과제로 꼽았다. 하정우 과실연 공동대표(네이버 퓨처AI센터장)는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기술뿐 아니라 국가 전반의 전략 수립과 실행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일 과실연 공동대표(모두의연구소 대표)는 “AI는 국가 안보의 핵심 기술인만큼 정책과 조직 모두 이에 걸맞은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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