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자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신규 활로 확보 차원에서 이들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247540)은 지난달 29일 열린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CATL 공급을 위한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코프로비엠 관계자는 “CATL이나 AESC 같은 중국 배터리 셀 업체들이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면서 “향후 중국 업체들의 추진 방안을 주시하면서 구체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코프로비엠 헝가리 양극재 공장은 연간 최대 10만 8000톤의 생산능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 준공 예정이다. 연간 전기차 135만대 가량 생산이 가능하다. 특히 데브레첸에 위치한 이 공장은 CATL 헝가리 공장과 불과 3㎞ 거리에 있어 입지상 유리하다. 특히 잠재 경쟁사로 꼽히는 벨기에 배터리 소재 기업 유미코어가 최근 실적 부진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거리가 가까우면 물류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성능 테스트만 통과할 수 있다면 공급 계약 체결 가능성이 상당할 것”이라며 “CATL을 고객사로 두게 되면 다른 중국 배터리 기업으로의 공급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솔루스첨단소재(336370) 또한 헝가리에서 3만8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전지박(동박) 공장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스페인 등에 거점을 둔 중국 배터리 기업과 중장기 공급 계약을 마쳤다. 유럽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ACC와 수주 계약을 체결한 점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솔루스첨단소재는 하이엔드 제품을 비롯한 고객사별 맞춤형 전지박을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하다. 현지 고객사를 추가로 확보해 장기적으로는 헝가리에서 총 10만톤의 생산능력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이처럼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중국과의 협력에 나선 것은 유럽에서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올해 1월 기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35.6%로 전년 동기 대비 15.4%포인트나 하락했다. 반면 CATL, BYD, CALB 등 중국계 점유율은 같은 기간 43%에서 56.3%로 13%포인트 올랐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이후 저가형 배터리 채택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CATL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유럽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유럽 점유율을 2021년 17%에서 2024년 38%로 빠르게 끌어올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견제로 인해 북미 시장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만큼 해외 진출이 가능한 지역은 사실상 유럽밖에 없다”면서 “유럽의 신성 배터리 업체로 주목받았던 노스볼트가 파산한 만큼 유럽 내 중국 배터리의 입지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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