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손해보험(000370)이 2019년 디지털 전문 손보사로 야심차게 출범시켰으나 계속 적자를 내온 캐롯손해보험의 흡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 전략적투자자(SI)와 굵직한 외부 재무적투자자(FI)까지 다수 유치하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에 등극했던 캐롯손보는 이번 완전자회사 추진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반토막 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손보는 외부 투자사들로부터 캐롯손보 지분을 되사오며 주주사별 각각 다른 기업가치를 적용한 것으로도 알려지면서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선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①적자누적에 IPO 어려워…한화손보, 흡수합병 결정
이번 한화손보의 캐롯손보 완전 자회사화 추진은 출범 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회사의 적자가 영향을 큰 미쳤다. 캐롯손보는 2022년 영업손실 832억 원, 2023년 748억 원, 지난해엔 658억 원을 기록했다. 매년 수백억 원의 손실이 누적되며 운영자금이 부족해지자 또다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캐롯손보는 2020년부터 거의 매년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자본을 조달해왔다.
그러나 캐롯손보의 조기 흑자 전환과 상장(IPO)을 믿고 수 차례 자본금을 댔던 주주사들 사이에선 더 이상 자본 투입이 쉽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한화손보는 캐롯손보의 경영권 매각까지 타진했으나 적당한 인수 후보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흡수 합병하기로 방향을 틀었다는 게 주주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캐롯손보는 계속된 적자에 IPO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우려되자 경영권 매각도 추진했으나 전략에 차질이 생겼고 한화손보의 완전 자회사화를 속전속결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다만 한화손보는 서울경제의 2월 12일 캐롯손보 매각 추진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이튿날 공식 발표했다.
②기업가치 4800억 적용, 잔여지분 전액 현금 인수
25일 공시된 한화손보의 캐롯손보 잔여 지분 인수 내역을 살펴보면 이번에 정식 평가된 캐롯손보의 평균 기업가치는 4791억 원이다. 캐롯손보는 2023년 마지막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1조 원을 넘어서는 등 ‘유니콘’에 등극한 바 있다. 그러나 2년여 만에 기업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티맵모빌리티와 현대차 등 SI들은 물론 펀드를 통해 투자했던 스틱인베스트먼트, 알토스벤처스, 어펄마캐피탈 등 사모펀드(PEF) 운용사·벤처캐피털들이 이번에 모두 투자금을 회수하게 됐다. 다만 후속 투자에 나섰던 펀드들은 당시 투자금 대비 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손보는 이번 잔여 지분 인수에 총 2056억 원을 전액 현금 납입할 계획이다. 이달 29일 지분 취득이 완료되면 한화손보의 캐롯손보 지분비율은 기존 59.6%에서 98.3%로 대폭 뛴다. 한화손보는 이후 캐롯손보를 합병하고 디지털 보험 사업을 내재화하면서 사업 시너지 방안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③주주사별 주가 차등 책정…일부는 손실 감수한 듯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번 한화손보의 잔여지분 인수가격이 주주사별로 달리 책정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FI 관계자는 “한화손보는 당사 펀드들이 보유하던 캐롯손보 지분을 각각 다른 밸류에이션을 적용해 인수해갔다”며 “후속 투자했던 펀드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또다른 주주사 관계자는 “당사는 초기 투자자여서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면서도 “한화손보가 주주사들과 개별 협상을 진행했고 각기 다른 밸류를 적용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후속 투자자였던 일부 펀드는 손실을 감수하며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안다”며 “한화손보로부터 다른 페이버(Favor)를 받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IB업계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은 한화손보의 이 같은 잔여지분 인수 방식이 법규를 위반한 건 아니라고 평가한다. 관련법상 비상장사 주식은 당사자 간 합의로 가격 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주주평등의 원칙은 회사와 주주 사이 관계에 적용될 뿐 주주 간 또는 주주와 제3자 간 거래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또다른 IB 관계자는 “세법상 시가와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경우 증여세 등 산정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충분한 검토가 뒷받침 됐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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