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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도, 닉슨도 비싼 수업료 치렀다…트럼프도 빠진 연준 통제의 유혹

연준의 강력한 경제 조절 기능

美 대통령들의 개업 욕구 불러

트루먼, 전쟁 후 저금리 통제…

인플레이션 불러 연준 ‘독립 협약’

닉슨도 1970년 살인적 고물가

트럼프의 파월 해임발언 이례적

일단락 됐지만 개입 재개 우려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기 재임시절인 2017년 11월 2일(현지 시간) 자신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제롬 파월의 연설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999년 4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열린 한 연찬회에서 한 참석자가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사람과 같이 사는 건 어떤 기분인가”라고 물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 질문에 “그건 안드레아 미첼에게 물어보라”고 답했다. NBC 소속 언론인이던 안드레아 미첼의 남편은 당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었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지만 그 영향력은 때로 미국 대통령에 견준다. 연준이 0.25% 남짓한 기준 금리를 바꾸면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거나 둔화된다. 때로는 전 세계 자금의 흐름이 뒤바뀌고 각국의 통화 가치가 널뛰기도 한다.

선출된 권력인 미국 대통령들은 끊임없이 경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연준의 기능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고자하는 유혹을 느꼈다. 이는 미국과 세계 경제의 리스크다. 연준은 금리와 국채 매입량을 조절하면서 미국의 경기와 물가를 조절한다. 경기가 과열되면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막는다. 항상 경기를 부양하고 싸게 자금을 조달하고 싶은 행정부와는 입장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때 정부의 입김에 연준이 휘둘리면 통화정책은 정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 결과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나 스태크플레이션일 가능성이 높다. 연준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연준 독립성은 경제적 고통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뒤 얻은 산물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부터 1951년까지 재무부가 금리 결정권을 갖고 연준을 하나의 소속 부서로 취급했다. 전쟁 자금을 싸게 조달하려 정부는 낮은 금리를 유지했고 그 결과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연준이 재무부에서 독립을 선포한 것이 1951년 재무부·연준 협약(Treasury-Fed Accord)이다. 이 사건은 연준이 정부로부터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한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협약 직후에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당시 재무부 차관보였던 윌리엄 마틴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하며 연준에 통제력을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마틴 전 의장은 대통령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긴축 정책을 펼쳤다. 마틴 전 의장은 “연준은 파티가 달아오를 때 과일바구니를 치운다”는 말로 연준의 고유 업무를 규정했다. 경기가 좋을 때 눈치를 보지 말고 물가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는 비유였다. 그가 독립적으로 금리를 결정하자 물가는 안정됐다. 마틴 의장은 역대 최장기 연준 의장으로 재임했다.



1969년 취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 마틴 전 의장의 임기가 끝나자 자신의 보좌관인 아서 번스를 후임 의장으로 임명했다. 번스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때도 닉슨 행정부의 완화적 통화정책 요구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 대가는 1980년 13%까지 치솟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이후 후임인 폴 볼커 연준 의장이 살해 위협을 감수하고 기준금리를 20%로 인상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지난 반 세기 동안 눈에 띄는 미국 행정부의 연준 통제 시도는 없었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 해임 시도는 그만큼 역사상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파월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서 “반드시 해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실제로 파월 의장을 해임할 수 있는지 법적 검토를 진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는 시장은 값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했다. 해임 검토 소식이 전해진 후 뉴욕 금융 시장에서 증시와 달러, 미국 국채 가격이 동시 폭락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수석 고문인 팀 하메디 이코노미스트는 “파월 의장을 해임할 경우 시장의 반응은 종말과 같을 것”이라며 “대가가 너무 빠르고 심각해서 철회하지 않으면 시스템적인 금융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가 출신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도 이런 의견을 전달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만류했다. 시장 급락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파월 의장을 해임할 의향이 없다”며 일단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통제 의지가 정말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정치적 의도로 일부러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고 보고 있지만 재임 기간 중 1929년 대공황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해 당장 교체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WSJ도 파월 의장을 쫓아낼 지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거의 10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가장 가까운 참모들조차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은 시장이 일시적인 안도감을 느끼고 있지만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은 쉽게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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