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 갈등의 폭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최정예 지도자가 삼성전자(005930)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주목을 끈다. 중국을 옥죄고 있는 미국에 맞서기 위해 한국과의 반도체 협력 강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딩쉐샹(丁薛祥)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14일부터 16일까지 산시성을 시찰하는 일정을 수행하면서 삼성전자 시안 공장을 들러 회사 관계자들을 만났다.
딩 상무위원은 중국 공산당의 최정예 지도자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다. 상무위원은 중국 최고지도부 7명 중 한 명으로, 공산당 서열 6위에 해당한다.
딩 상무위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랜 비서 출신으로, 시 주석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로도 분류된다. 이른바 시자쥔(시진핑 측근 그룹)의 핵심으로 차기 총리·국가주석 후보군으로도 거론될만큼 정치적 입지가 탄탄하다.
아울러 그는 중국의 과학기술 전략을 총괄하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수장 자리도 맡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인사이기도 하다.
딩 상무위원은 삼성 시안 공장 방문에서 공장 시찰에 그치지 않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부과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대외 개방은 중국의 기본 국책이며, 보호주의의 역풍이 거세질수록 우리는 더욱 개방을 확대해야 한다"며 "관세 전쟁과 무역 전쟁은 인심을 얻지 못하며 중국은 각국과 협력하며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회사의 주력인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총 2개 라인이 운영되고 있고 삼성전자가 연간 생산하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40% 이상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최근 8세대(178단) 낸드와 9세대(256단) 낸드 공정 전환을 시작했다.
딩 상무위원의 시안 공장 방문은 중국이 삼성과의 협업으로 트럼프발 관세·반도체 수출 규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중국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번 시찰에서 삼성 시안 공장과 함께 저압전기 생산회사인 정타이그룹·태양광 회사 룽지·첨단 신소재 R&D 연구조직인 서북비철금속연구원·서북공업대학·중국-유럽 화물열차 집결 센터 등을 찾았다. 모두 중국 정부가 강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 정무위원은 시 주석 대신 정부의 기조를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시찰 장소마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최고 권력자가 삼성 시안 공장을 방문한 사례는 많지 않다. 2019년 중국 권력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가 시안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협력 강화를 시사한 이후 10위 내 인물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지난 달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열린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면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는 등 중국 최고위 관계자들이 위기 상황 속에서 삼성에 연달아 협력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YMTC·CXMT 등 메모리 업체들을 필두로 미국 관세 전쟁에 대비하고 있지만 아직 경쟁력이 약한 상황"이라며 "삼성·SK하이닉스와의 협력을 모색하면서 HBM 등 AI 반도체 공급 위기를 타개하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엔비디아의 중국용으로 만들어진 저사양 AI 칩 ‘H20’ 수출 규제에 이어 인텔·AMD 제품까지 규제 대상에 추가하는 등 강도 높게 중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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