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컴퓨터 천재들이 모이는 일종의 특수 교육시설인 베이징대 투링반. 최근 찾아간 투링반 건물 앞에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전략연구원장 저우홍이 강의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최고의 인공지능(AI) 전문가가 중국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을 집중 육성하는 천재 교육 시스템이 현장에서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이나 SK하이닉스의 최고경영자(CEO)가 가끔 서울대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찾기는 하지만 대부분 인재 채용을 위한 특별 강의 형태여서 100% 실무 교육이 진행되는 투링반과는 성격이 다르다. 투링반은 컴퓨터과학의 아버지인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의 성을 음차한 것으로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베이징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인 배호진 씨는 “요즘은 2학년만 돼도 1저자로 논문이 나오기도 한다”며 “박사생들의 지도만으로 논문을 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웃 칭화대에서도 AI가 실제 산업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의 사례를 예로 든 세미나가 열린다는 예고가 교내 정보망에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우리 교육 시스템도 중국을 벤치마킹해 AI 인재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창조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 교육 시스템 자체가 범용 인재를 길러내는 쪽으로 특화돼 있고 어쩌다가 인재가 발굴돼도 의대 입학을 목표로 암기식 교육에 빠져 있어 AI 시대를 선도할 천재를 키워낼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최근에는 세계 최저 수준의 처우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인재들도 늘고 있다. 첨단 학과를 전공한 석박사급 인재들이 졸업과 동시에 해외 기업이나 연구소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 모(30) 씨는 미국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시장 규모부터 차이가 많이 나고, 억대 연봉을 주는데 안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AI 미국기업인 오픈AI의 박사급 AI 연구원 초임 연봉은 약 12억 2000만 원에 달한다.
중국의 천재들이 자국에 남아 딥시크와 같은 기업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교하면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실제 베이징대와 칭화대 소속 특수반 학생들은 수학·물리 등의 수업을 최고 난이도로 배운 뒤 대부분 석박사까지 학업을 이어가고 이후에도 중국에 남아 연구를 계속한다. 딥시크 창업자인 량원펑도 중국 저장대를 졸업한 토종 인재다. 이원석 베이징대 박사과정생은 “중국에서는 조교도 주말 없이 자정까지 연구하는 게 일상”이라며 “학생들의 몰입도와 환경, 제도 모든 면에서 한국과는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AI 고급인재 별동대’를 구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위 1% 수준의 AI 고급 인재들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만큼 고급 인재를 집중 지원하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전액 등록금 면제 △연 1억 5000만 원 수준의 고액 장학금 △산업계와의 실질적 연계 트랙 등이 거론된다. 심지어 병역 면제까지도 검토해볼 만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AI 인재를 열심히 키워도 다들 글로벌 회사로 가버리면서 인재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우리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1% 인재들이 국내에 남을 수 있도록 군 면제 같은 정책을 파격적으로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파격 정책은 정부가 앞장서 설계하지 않으면 현실화하기 어렵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단순히 창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학제 개편 중심 교육 개혁으로는 성과를 내기 힘들다”며 “최고의 두뇌가 AI나 반도체·컴퓨터 쪽으로 진로를 틀 수 있도록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강력한 뒷받침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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