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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육성 위한 재정지출 확대 필요…포퓰리즘 빠져선 안돼"

[다시 미래로 반세기의 대화]

<하> 경제 원로·청년 기업가가 바라본 韓 경제

유일호 전 경제 부총리

정치권 극한대립 되풀이 해선 안돼

트럼프 관세정책 무한정 못 이어가

협상 기술 발휘 우리 이익 관철을

고용유연화 통해 노동 고질병 해결

AI산업 등 필요한 지출 확대는 필요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탄핵 정국에 스타트업 투자 멈춰

실패 용인 '실리콘밸리 문화' 이식

재정 건전성 유지, 기업 성장 직결

글로벌기업 성장 위한 제도 정비를

中서 짐싸는 글로벌 기업 유치 노력


대한민국 경제를 최전선에서 이끌었던 70세의 전직 부총리와 패기 넘치는 31세의 스타트업 대표.

40년에 가까운 세대 격차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문제 인식은 비슷했다. 과거의 성장 엔진은 낡아가는데 새로운 동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기본 인식이 그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연 1%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산업 혁신 저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인구절벽 △정치·사회 양극화 △가계부채 확대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껴안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 사태 속에 파면당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러온 또 다른 불확실성은 바깥에서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 있는 셈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 한 유일호 삼성생명 이사회 의장(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는 당장 미국과 협상을 통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목소리를 냈으나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저성장 돌파 대책과 향후 경제 전략에 대해서는 일부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다만 재정 지출 확장 여부에 대해서는 “재정 건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이 무너진다”며 “맞춤형 재정 전략이 필요하다”고 동시에 경고했다.

유일호 전 경제 부총리




-대통령 탄핵 선고에 따라 우리 경제가 리더십 공백을 맞이하게 됐다. 단기적으로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수습하는 것은 차기 정부의 몫인데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유 의장=계엄·탄핵 정국 이후 불안한 정치 상황이 해외에 노출됐고 이것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졌다. 조기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설 텐데 이 과정에서 정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치권이 또다시 극한 대립 구도에 매몰돼서도 안 된다.

△이 대표=계엄과 탄핵 정국 이후 대한민국의 많은 부분이 정지된 상태다. 경제에 상당 부문 기여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멈췄다.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해외 벤처캐피털(VC)의 투자 기회가 무산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와 국회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새 정부는 혁신 방향에 맞다면 정치 논리에 상관없이 투자가 이뤄지도록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중국 선전이나 미국 실리콘밸리를 보면 정치적 논리와 상관없이 꾸준한 투자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다. 새 정부에서 어떤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유 의장=트럼프 대통령이 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으로 밀어붙인 다음 최대한 많이 받아내려는 전형적인 사업가 전략이다. 우리도 내줄 수 있는 건 내주고 취할 건 취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 요구를 일부 들어준 후 관세 인하를 요청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또 트럼프가 무리한 관세정책을 무한정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트럼프 대통령이 실리를 중시하는 만큼 협상 카드를 얼마나 잘 마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대선까지 정상외교를 전개하는 데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대신 행정부 차원에서는 지속적으로 미국 각계와 연락을 유지하고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면서 우리의 대응 방안을 잘 준비해야 한다. 미국 측이 러브콜을 보내는 조선, 반도체, 액화천연가스(LNG) 분야에 대한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특히 우리나라의 뛰어난 첨단 기술 관련 인력 및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세 속에 올해 우리 성장률이 0%대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 의장=한국 노동시장의 고질병인 이중구조부터 깨고 고용 유연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미래를 지배할 인공지능(AI)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 마련도 시급하다. 주입식 교육 체제를 바꾸고 대학 교육까지 교육부가 통제하는 현 체계를 바꿔야 한다. 대학에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미래에 대비할 인재를 키울 수 있다.

△이 대표=스타트업이 매우 중요하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원 및 자본은 획기적인 전환에 한계가 있는 만큼 지식과 기술 및 기업가정신 측면에서의 혁신이 필요한데 이는 스타트업이 주도해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들은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AI 스타트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가 새로운 시대의 변곡점을 만들 것이라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산업계·학계 등 모두 ‘AI 트랜지션(transition)’을 본격화해야 한다.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트럼프 대응 방안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목소리를 냈던 노청(老靑)은 저성장 대응을 두고는 약간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조 개혁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게 유 의장의 견해라면 이 대표는 민간,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 사령탑으로서 큰 틀의 정책을 짜던 유 의장과 사업가인 이 대표의 경력 차이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구조 개혁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구조 개혁에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모험자본에 투자하는 게 더 성공률이 높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래 성장 동력인 AI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재정 당국의 수장이었던 유 의장은 지원 대책을 먼저 이야기한 반면 이 대표는 “창업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지고 있다. 어떤 해법이 있다고 보는가.

△유 의장=규제 개혁으로 기업들이 AI 분야에 적극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이 더 확대돼야 한다. 법 개정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다. 지나친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AI 산업 발전에 저해가 될 수 있다. 연결되게 해야 AI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지원도 필요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실패에 가혹하다.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 더 큰 성공을 위해 나아가는 창업자들을 지원해주는 인내심과 여유가 없다. 실패한 스타트업은 투자도 못 받고 능력 없는 창업자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도 매장된다. 실패가 용인되고 이것이 다시 성공의 발판이 되는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이식하는 게 필요하다. 또 한국의 특정 지역을 미국 실리콘밸리의 ‘확장 영토(extended territory)’라고 인식될 수 있을 정도로 규제를 완화해 조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산업구조 혁신 방안에 대한 견해도 엇갈렸다. 유 의장은 “망할 기업은 망하게 둬야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이 대표는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내놓지 못해 산업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혁신 빅테크 기업이 부상하는데 우리나라는 산업구조를 바꾸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유 의장= 우리 산업의 가장 큰 문제가 구조조정이다. 한진해운이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사례에서 보듯 망할 회사는 시장에서 망하고 살아남을 회사는 살아남는 게 맞다. 이런 구조조정이 돼야 기업이 AI 같은 미래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이 한 산업을 그만두는 것도 힘들다. 더 이상 정부 주도 구조조정에 의지하지 말고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힘든 구조부터 바꾸고 기업이 신사업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이 대표=미국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절반이 1990년대 이후 설립된 스타트업 출신 정보기술(IT) 기업이다. 이 업체들은 설립된 지 30년 만에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스타트업이 곧 국가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이며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저성장 해법과 산업 구조조정을 두고 견해 차이를 나타냈던 두 사람은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도리어 한목소리를 냈다. 세대와 경력 차이를 뛰어넘어 재정 만능주의식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의견 합치가 나타난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건전 재정 기조를 바꿔 확장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 의장= 꼭 필요한 부분의 지출 확대는 경기 하방 압력을 낮추기 위해 시행돼야 한다. 다만 재정 건전성은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 고령화와 저출산이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재정 적자에 적기 대응하지 않으면 국가 신용등급의 하락, 물가 급등으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미래 세대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정준칙 제정이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준칙을 도입한 경험이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터키뿐이다.

△이 대표=국가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 유지가 기업들의 성장과 직결된다고 본다. 특히 혁신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은 초기 R&D 투자와 규제 개선 등에서 정부 지원과 민간 벤처투자 활성화가 필수인데 국가 재정이 악화될 경우 민간 자본시장의 투자 여력과 정부의 혁신 산업 지원 모두 축소될 우려가 있다. 결국 재정 건전성 확보는 시장의 신뢰 회복뿐만 아니라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대선 이후 누가 정권을 잡든 대규모 추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도 연내 1~2회 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있다.

△유 의장=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물가, 환율 급등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 하방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 재정 확대 여력은 제한돼 있지만 꼭 필요한 부분의 지출 확대는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 관련 R&D 예산 등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갈등을 줄이고 통합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이 대표=AI와 인터넷이 발달하고 있는 초개인화 사회에서 통합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팔로십(Followship)이 강한 국가다. 정해진 방향이 옳다면 사람들은 잘 따를 것이다. 결국 난세일수록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중심을 잡는 게 없다 보니 ‘n개’의 목소리가 왔다갔다 하는거다. 대한민국은 국가 주도로 성장한 경험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이러한 위기에 국가 주도로 중심을 잡아준다면 통합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한국 경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향후 우리 경제 정책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유 의장=트럼프 행정부가 자유무역의 원칙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서 같이 강경하게 대응할 수는 없으나 협상의 기술을 발휘해 우리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분야는 있다고 본다. 대표 분야가 조선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미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을 상수로 두면서 우리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 대기업의 미국 내 공장 투자가 많이 이어질 텐데 국내 중소기업들의 납품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안보적인 이유로 중국에서 빠져나가는 미국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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