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관광진흥을 위해서 차라리 ‘관광청’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문화체육관광부 안의 ‘관광국’을 아예 떼내고 확장해 독립의 ‘관광청’을 만든다는 말이다. 국내 및 글로벌 관광 현실은 급변하고 있는데 관광산업의 혁신은 물론, 현재의 시스템 자체가 현실 수준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다. 향후 관광청은 단순히 개별 부처(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 아니라 전체 정부 부처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도구가 돼야 한다.
지난 3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관광환경 변화에 따른 관광정책 및 법제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관광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지난해 출범된 국회관광산업포럼이 진행한 두 번째 관광정책 세미나다. 국회관광산업포럼은 지난해 10월 25일에 결성식과 첫 포럼을 연 바 있다. 포럼 공동대표는 김석기 의원(국민의힘)과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이훈 교수(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이다. 전재수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국회를 주축으로 진행된 포럼이라는 점에서 이슈는 법률 등 관광 관련 시스템 개편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두 번의 포럼에서의 논의에 따르면 관광 관련 법률의 핵심인 관광기본법 및 관광진흥법은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다른 분야의 법률도 마찬가지지만 관광은 특히 그렇다. 이제 아예 재개발이나 적어도 ‘올리’(올 리모델링)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이들 법률이 구식이라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최신 관광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리고 관광이라는 것을 아주 좁은 범위만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관광 법률은 인식의 기초가 아직도 관광이나 여행이 ‘먹고 노는 것’이라는 후진적 관점에 머문다. 관광을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성장시킬 기회로 보지 못하고 있다. 관광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 전체로 확대되고 있지만 법 조문은 과거 잔상에서 여전히 헤맨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대학 등 세미나 발제자와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측면이다.
포럼 발표에 따르면 관광진흥법에 근거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관광산업 조사’에 따르면 국내 관광 산업 총 매출액은 2019년 26조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소 위축된 2022년 17조원이었다. 즉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명목 GDP가 2040조원(또 2022년은 2323조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광산업 매출은 GDP의 1% 남짓밖에 안되는 셈이다.
하지만 세계여행관광협의회에 따르면 글로벌 관광산업 비중은 2019년 기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차지했고 3억3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오는 2033년에는 15조5000억달러로 더욱 성장해 세계 GDP의 11.6% 수준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 규모 또한 4억3000만명으로 세계 노동 인구의 약 12%가 관광업계에 종사하게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관광산업이 GDP 대비 비중이 미비한 것은 결국 관광진흥법이 포괄하는 범위가 작기 때문이다. 관광법제의 핵심인 관광진흥법은 과거 아날로그 관광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현행 관광진흥법은 기껏해야 여행사, 관광지, 숙박업소, 국제회의업, 카지노, 테마파크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규모가 큰 항공사·철도 등 교통, 면세점 등 유통, 제조업, 그리고 온라인 여행플랫폼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포럼에서 “전체 관광산업 생태계에서는 17개 업종이나 관여한다. 하지만 국내 관광진흥법이 대상으로 하는 기업 비중은 글로벌 수준 관광산업 전체의 18%에 불과하다”고 제기됐다. 문체부 담당인 관광 정책이 전체 국가시스템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현재 국회관광산업포럼에는 현역 국회의원들과 함께, 관광 관련 협회, 학계, 여행사, 여행 전문 언론사, 몇몇 로컬 관광서비스기업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항공사나 유통사, 주요 플랫폼 등 굵직한 기업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른 산업과의 관계에서만 문제는 아니다. 이들 법률은 하나의 법률에 관광 진흥과 규제가 한꺼번에 돼 있다. 대상은 기존의 관광에 머물고 새로운 관광 현상은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제관광, 지역관광, 관광벤처, 산학연계, 전문인력 양성 등에 지원 근거가 없다. 예를 들어 현행 관광기본법 제6조(지방자치단체의 협조) 항목은 ‘지자체는 관광에 관한 국가사무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이는 지역관광 핵심인 지자체를 중앙정부(문체부)의 낮은 수준의 보조 수행기관으로 상정한 것에 그친다.
관광기본법 제6조는 지난 2007년에 만들어졌으니 거의 20년 전의 과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문제점을 인식한 문체부는 지난 3월 초에 공개한 자체적인 문화 중장기 비전 ‘문화한국 2035’에서 문화정책 패러다임을 현재 ‘중앙-지역 하향식 전달’에서 앞으로 ‘중앙-지역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바꿔야 한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현재 관광 주무부처인 문체부로서는 이러한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내부 개선과 함께 외부와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내부 개선이야 그럭저럭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정부 부처와의 협력은 더 어렵다. 즉 면세점 등 유통이나 항공사 등 교통을 ‘관광진흥법’ 체계 안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데 이게 잘 안된다. 결국 부처 칸막이 때문이다. 현재 범정부적으로 13개 부처가 참여하는 이른바 ‘국가관광전략회의’가 있지만 주요 이슈에서 목소리가 큰 법무부나 외교부,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회관광산업포럼도 국회 문체위 등 국회의원들과 문체부, 그리고 현행 관광진흥법에 포함되는 업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라리 관광 업계에서는 아예 관광청이라는 독립 기관을 만들어 각 부처 간의 관광 이슈 관련 사항을 다루게 하자는 “관광청 독립”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면 관광청이 힘을 받고 이를 통해 범정부적인 정책 조율이 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전망에 따른 것이다.
시스템 개편은 물론 쉽지 않다. 관건은 국정최고책임자의 관심에 달렸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국가관광전략회의가 대통령 주재였지만 문제인 전 대통령 때 국무총리 주재로 격화됐다. 지금도 국무총리 그대로다. 또 지난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제주)관광청’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유야무야였고 지금은 대부분 이런 주장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한다.
관광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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