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총 210억 달러(약 31조 원) 투자의 일환으로 미국에 제철소를 건설하면 강판부터 배터리팩, 자동차 생산까지 완전 현지화하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미국 제조업 재건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관세 폭탄을 피하고 가격 등 판매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율주행과 로봇 등에서 최고 기술을 보유한 미국에서 우수 기업들과의 협력을 늘려 사업화를 추진하는 등 미래 성장 동력도 마련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2028년까지 21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미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최근까지 미국에 총 205억 달러(약 30조 원)를 투자했는데 이날 계획에 따라 415억 달러(약 61조 원)로 두 배가량 투자 규모가 늘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신규 투자 계획에서 현대차·기아의 120만 대 생산 체제 구축,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 건설이 핵심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86억 달러를 투입해 신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연간 생산 능력을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확대한다. 2004년과 2010년 가동을 각각 시작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6만 대), 기아 조지아 공장(34만 대)과 함께 12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기존 공장의 생산 설비 현대화·효율화도 함께 이뤄진다. 완성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은 현지에서 조달한다. 미국에 동반 진출한 부품 계열사들이 계획한 투자 규모는 61억 달러에 달한다.
현대제철은 58억 달러를 투입해 루이지애나주에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짓는다. 미국 최초의 전기로 제철소로 연간 270만 톤의 생산 규모를 갖출 예정이다. 이곳에는 원료 생산 설비와 전기로, 열연 및 냉연강판 생산 설비가 들어선다.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SK온과 함께 미국 내 배터리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인데 이르면 올해 말부터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자동차 강판과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미국 내에서 조달해 현지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는 63억 달러가 집행된다. 자율주행·로봇·인공지능(AI)·미래항공교통(AAM) 등 신기술과 관련해 현지 기업과 협업으로 미래 사업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로보틱스 등 모빌리티 솔루션을 지능화하고 사업 전반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와는 아이오닉5를 활용해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웨이모 원’을 확대한다.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로보틱스 앤 AI 연구소(RAI)’는 강화 학습 기반 지능형 로봇을 개발하고 슈퍼널은 2028년 AAM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미국 여러 주와 무인 항공기 테스트 협업을 추진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전기차 충전소 확충에도 힘을 보탠다.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인터내셔널과 올해 말 미국 미시간주에 소형모듈원전(SMR) 착공을 추진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태양광발전소 사업권을 인수하고 2027년 상반기 상업운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차 초고속 충전 서비스 연합체인 아이오나(IONNA)를 통해 미국 내 충전소도 대폭 늘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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