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이 들썩이자 정부가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대출 금리 인상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대출 총량 관리와 시중은행 대출금리 인하라는 모순된 정책을 펴는 사이 투기심리가 꿈틀대자 또다시 땜질식 처방을 내놓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19일 발표한 ‘주택 시장 안정화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정책대출 증가세가 주택 시장 과열 요인으로 확인될 경우 대출금리를 인상하기로 했다.
정책대출은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저금리 대출 상품이다. 지난해부터 매달 2조~3조 원씩 늘면서 전체 가계대출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지만 정부는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대출 조건을 조정하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가 이제 와 정책대출을 손보기로 한 것은 대출 관리 정책을 남발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은행별로 대출 총량을 할당해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가산금리를 내리도록 해 대출 수요를 부추겼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최소한 신규 대출금리에 대해서는 (가산금리) 인하 여력이 있다”고 은행권을 압박했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가 불을 붙이면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정책대출이라도 죄지 않으면 시장의 연쇄적인 부동산 거래를 촉발해 집값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다급히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당장 문제가 생기면 관치를 통해 해결하려다 보니 정책이 상충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관치로 인한 피해는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신한·하나·우리은행이 최근 대출금리를 낮추는 와중에 KB국민은행은 가계대출 증가 부담에 금리 조정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금리 인하와 총량 관리라는 엇갈린 당국의 주문에 대출 관리 방향을 잃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총량 규제의 부작용만 커지고 있는 꼴이다.
전직 금융 감독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근거가 없는 총량 규제가 너무 세밀화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며 “총량 관리가 당장의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개입해 해결하려고 하면 끝이 없고 시장만 왜곡된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 규모에 어느 정도 공간을 두면서 총부채상환비율(DSR)을 활용해 가계부채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DSR도 지방과 서울, 지역별로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계에서도 정부가 총량 관리라는 무딘 칼을 쓰면서 정책 실패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에서 여신 업무를 담당하는 한 임원은 “투기 수요가 한번 불붙기 시작하면 대출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늘어나니 정부의 관리가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정부가 DSR과 같은 큰 틀을 제시해둔 뒤 은행별 사정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관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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