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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8단체 "기업인 줄소송 직면…'코리아 미러클' 꿈도 못 꾼다"

■ '상법개정 반대' 공동성명

"이사 의무 추상적으로 규정" 비판

행동주의 '경영권 공격' 우려도

사업재편·과감한 투자 어려울듯

"상장사 한정 자본시장법 개정을"

崔대행에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

박일준(왼쪽 두 번째)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과 이동근(〃네 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김창범〃다섯 번째)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등 경제 8단체 임원들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경제계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개정안을 근거로 이사들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주주 소송이 난무하면 과감한 투자나 신속한 사업 재편이 어려워 기업 혁신이 불가능해진다고 경제계는 우려했다. 상법 개정을 주도한 야당이 말하는 ‘K엔비디아’의 기적은 꿈도 꿀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해 한국경제인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는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긴급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경제계는 먼저 이번 상법 개정안이 경영 불확실성을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계는 “이사의 의무에 대해 너무 추상적이고 단순한 법언으로 규정해 실제 경영 환경에서 이사가 부담해야 할 의무의 기준과 세부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양한 주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주 간 이익 충돌 시 ‘총주주의 이익 보호’ 등의 모호한 표현은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돼 경영상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 우려도 커졌다. 현재의 주주대표소송은 회사 손해를 전제로 회사에 배상한다. 반면 주주 보호 의무 위반 관련 소송은 주주 손해를 전제로 주주에게 배상하는 것인 만큼 삼성전자(005930)·현대차(005380)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 제기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약점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펀드의 요구가 주주 의무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경영진인 이사의 손발을 묶으면 결국 기업의 성장 동력이 훼손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경제계는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선제적 사업 재편과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통한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개정 상법은 이사의 결정을 어렵게 하고, 소송을 피하려 현상 유지에만 급급한 보수적 경영을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현장 기업인들은 상법 개정 과정에서 “혁신의 시작이 되는 역발상은 설득하기 어려울 것” “상장도 꺼릴 것”이라는 잿빛 전망을 쏟아냈다.

상법 개정안이 법리적 원칙과 국제 규범과도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계는 기본법인 상법을 개정해 모든 기업에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미국과 영국·독일·캐나다·일본 등 주요국은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로 한정한다.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역시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계는 “일부 상장사는 주주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데 현재 안정적으로 동시 접속 가능한 전자 주총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부정확한 주주 자격 확인으로 인한 대리투표, 해킹 등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국에서도 전자 주총을 의무화한 입법례가 없는 만큼 제도의 실효성과 부작용 등을 잘 따져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자본시장 발전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며 주주 권익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부분은 상법보다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핀셋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반드시 재의 요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21일 정부로 이송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이송 이후 15일 이내 공포하거나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거부권 행사 시한은 다음 달 5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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