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7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1%에서 1.5%로 대폭 낮췄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 등 글로벌 통상 여건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한국의 하락 폭은 관세 인상의 타격을 직접 받는 멕시코와 캐나다를 제외한 주요국 중 가장 컸다. 한국 경제가 대외 불확실성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 불안 등 내부 요인 압박도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전망보다 크게 떨어진 이날 수정치에는 계엄·탄핵 사태 이후 빚어진 정치·경제 불확실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우리 경제의 위기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15개월 연속 호조를 보이던 수출 증가율은 올 1~2월 전년 동기 대비 4.75% 감소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은 2월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반도체 사업 부진을 겪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은 최근 임원 세미나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면서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과 초격차 기술 개발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관세 전쟁 속에서 더 하락하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외교통상 라인을 조속히 복원해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 혁파와 세제·예산 등의 전방위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는 말로만 ‘성장’을 외칠 뿐 경제 살리기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주52시간 근무 완화를 담은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가로막고 있다.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 연구개발(R&D) 인력들이 밤에도 불을 켜고 연구하는데 한국만 주52시간의 족쇄에 묶인다면 기술 혁신은 요원하다. 민관정이 신성장 동력 육성과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해 총력전을 펴야 저성장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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