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정보기술(IT)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주 환원보다 대규모 투자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국내 증시에서 다른 업종은 전반적으로 배당성향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17일 발표한 ‘주주 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자본지출이 기업 성장의 핵심 요소인 산업의 경우 여유 자금을 주주 환원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기업가치 제고를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설 투자, 연구개발(R&D) 지출이 많은 소프트웨어·반도체 등의 IT 업종은 금융업과 달리 주주 환원보다 자본 투자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더 효과가 크다고 본 것이다.
다만 IT 업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은 주주 환원 규모가 클수록 기업가치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수준이 낮은 만큼 주주 환원 확대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은이 주요 20개국(G20) 중 16개국 3560개 기업(2019~2023년 기준)의 주주 보호 성향, 재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의 27.2%에 불과해 16개국 중 최하위였다. 한국 기업의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액을 더한 주주 환원 규모는 영업 현금 흐름의 0.2배에 그쳤는데 이는 신흥국인 튀르키예와 아르헨티나(각 0.1배)보다도 뒤처진 수준이다. 주주 보호 점수는 6.8점으로 12위에 그쳤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의 기업가치는 평균 이하 수준을 기록했다. 자본 대비 시가총액(PBR)은 1.4배로 인도(5.5배)는 물론 미국(4.2배), 영국(3.3배)보다 낮게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소극적인 주주 이익 보호가 기업가치 저평가로 이어진 만큼 주주 환원 확대로 주가를 높이는 선순환이 생겨야 한다는 게 한은의 결론이다. 한은 관계자는 “주주 보호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주주 환원 확대가 기업가치 제고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며 “다만 밸류업 지수를 구성할 때 기업가치에서 자본적 지출이 중요한 업종 특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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