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호주 조선·방산 업체인 오스탈의 지분을 공개 매수한다. 미국에 군함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를 보유한 오스탈을 인수해 미 함정 시장에 진출한다는 포석이다. 한화는 지난해 미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호주 투자업 계열사인 ‘HAA No.1 PTY’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2669억 원을 투입한다고 17일 공시했다. 한화시스템이 2027억 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642억 원을 내놓았다. HAA No.1 PTY에는 앞서 투자한 자금까지 총 3378억 원이 쌓였다. 한화는 이렇게 마련한 실탄을 전부 오스탈 지분 인수를 위해 쏟아부을 계획이다.
한화는 2021년 오스탈 인수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4월 약 10억 2000만 호주달러(약 8960억 원)를 인수가로 제시하며 최종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협상은 5개월 만에 무산됐다. 오스탈 이사회는 ‘인수 전 실사를 하려면 500만 달러를 내야 한다’는 조건을 거는 등 협상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
이에 한화는 협상이 아닌 공개매수 방식을 통해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1억 8000만 호주달러(약 1655억 원)를 투입해 오스탈 주식 9.9%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는 주당 4.45호주달러로 전날 종가에 비해 16% 높은 가격이다. 호주 상법상 해외투자가는 지분 1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호주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의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화는 9.9% 지분을 우선 확보한 뒤 FIRB 승인을 얻어 지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오스탈의 현 시가총액은 13억 9100만 호주달러(약 1조 2700억 원) 수준인데 최대주주가 되기 위해서는 20%가량의 지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가 공개매수 카드까지 꺼내며 오스탈 인수에 나선 것은 미 함정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국 조선 업계에 협력을 요청하면서 접었던 인수 작업이 다시 급물살을 탔다. 오스탈은 호주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 앨라배마 조선소를 통해 미 해군 관련 사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미 해군의 연안 전투함인 LCS 생산을 맡았고 핵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다. 최근에도 미 해군으로부터 1억 5600만 달러(약 2060억 원) 규모의 선박 2척을 수주했다.
한화는 지난해 인수한 미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와 앨라배마 조선소를 양 축으로 미 선박 발주를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필리 조선소는 상선, 앨라배마 조선소는 특수선을 중심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다가올 수주전을 위해 미 공화당 주요 인사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한화는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에드윈 퓰너 미국 해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과 조지 P 부시 마이클베스트&프리드리히 로펌 파트너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한다. 퓰너 회장은 미국 공화당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인 헤리티지재단의 공동 설립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행정부에서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인 겸 변호사인 부시 파트너는 아버지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할아버지가 조지 H W 부시 미 41대 대통령, 큰아버지는 조지 W 부시 미 43대 대통령이다. 이들은 2년 전 사외이사로 선임돼 한화오션(042660)의 미국 진출을 도왔다. 한화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미 해군 함정 정비·보수·유지(MRO) 사업에 진출해 연달아 2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것도 퓰너 회장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올해 미 해군 MRO 사업은 5~6척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미 상선 및 군함 건조가 가능해지면 수주전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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