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위치한 홈플러스에서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최근 폐점을 결정하고 홈플러스 측에 보증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에 들어간 후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영업하기 보다는 일찌감치 발을 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라면서 “보증금을 빨리 돌려받고 싶은데 답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임대점주(테넌트)들이 정상화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폐점’과 ‘영업 지속’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소상공인 결제대금 조기 지급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대상과 금액을 밝히지 않은데다 여전히 정산을 받지 못한 임대업체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폐점을 하고 싶어도 계약기간이 남아있으면 기본임대료에 관리비, 매장 원상복구비까지 내야 해 부담이 크다. 계약기간이 종료됐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현재 보유 중인 현금으로는 보증금 반환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14일 기준 3510억 원 규모의 상거래 채권 지급을 완료하고 대금지급이 이뤄지지 않은 일부 협력사와 임대점주들에게 상세 변제계획과 일정을 전달했다고 17일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점주들은 여전히 관련 지침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임차료로 뗀 후 사후정산받는 ‘임대을’ 점주들의 걱정은 더 크다. 홈플러스가 향후 정상 영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매출 총액이 고스란히 홈플러스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속옷을 판매하는 한 입점업체 관계자 B씨는 “1월 대금을 정산받았지만 알고보니 홈플러스에서 준 게 아니라 브랜드에서 어음으로 지급해준 것이었다”며 “언제까지 이런 방식이 지속될 수 있을지, 결국 내 돈을 떼이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통상 대형 할인마트는 임대을 방식의 입점업체가 전체의 60%에 이른다.
폐점 역시 쉽지 않다. 1년 단위로 매장 계약을 하는데 폐점 3개월 전 홈플러스에 연장 여부에 대한 사전 통지를 해야 한다.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폐점할 경우 남은 기간의 기본임대료와 관리비, 매장 인테리어 등에 대한 원상복구비까지 추가로 부담하게끔 돼있다.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협회 부회장은 “원상복구비는 통상 500만 원으로 기본임대료가 5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계약기간이 한 달 남았어도 최소 1000만 원을 홈플러스에 내야 폐점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게다가 폐점을 하려 해도 홈플러스가 보증금을 내줄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매장 한 곳당 보증금을 2000만 원으로 가정하면 전체 약 8000개에 달하는 입점업체 보증금만 1600억 원에 달해 홈플러스가 보유 중인 현금시재와 맞먹는다. 강 부회장은 “점주들 사이에서는 폐점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일부 점주들은 홈플러스가 정상화될 때까지 개별 포스기(결제단말기)를 사용하고 임차료만 내게끔 특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본사로부터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입점협회는 19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홈플러스 대책 태스크포스(TF)에서 홈플러스와 간담회를 갖고 답변을 촉구할 계획이다.
한편 홈플러스가 지난해 말부터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점포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희망퇴직을 통해 380여명이 퇴사했다고 노조 측이 이날 밝혔다. 희망퇴직 대상 직원(2130명)의 18% 수준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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