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주요 5개국(G5,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 재무장관들이 모였다. 당시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고 강달러가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독일을 압박해 달러 가치를 낮추기로 합의했고 이후 엔화와 마르크화가 급등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이를 ‘플라자 합의’라고 부른다. 40년이 지난 지금, 도널드 트럼프 2기에서 또 한 번의 국제통화 체제 개편이 진행될까. 시장에서는 ‘마러라고 합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해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달러 가치에 미칠 영향을 두고 논쟁이 활발하다.
트럼프 정책에서 환율의 향방을 읽기는 매우 어렵다. 관세를 동원한 보호무역주의는 달러 강세 가능성이 크다. 무역 상대국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주저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해 한 강연에서 관세 부과에 따른 효과의 3분의 2는 달러 가치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으로는 제조업 부흥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운 트럼프가 강달러를 그대로 둘지 의문이다. 달러 강세가 지속하면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무역적자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트럼프 1기부터 그는 강달러를 비판하며 미국 수출기업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런의 지난해 말 보고서는 플라자 합의식으로 주요국들에 환율 조정을 압박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마러라고 합의로 명명한 이번 구상에서는 압박을 위해 관세 카드를 적극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플라자 합의 직전인 1985년 여름에도 미 상·하원은 대미 흑자국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달러 가치 조정을 위한 관세 부과, 40년 전 기억이 되살아나는 묘한 데자뷔다.
트럼프가 다시 강압적 통화 개입에 나선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동맹국이 대상이었다면 지금 트럼프가 주 타깃으로 삼고 있는 국가는 중국·러시아·인도 그리고 중동 산유국들이다. 이들이 미국의 압박에 순순히 응할까. 관세가 주식시장 폭락이나 경기 침체를 촉발한다는 우려가 큰 지금, 트럼프가 당초의 구상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
시장 전망도 제각각이다. 주식시장 폭락이나 경기 침체가 초래할 대중의 반발로 인해 트럼프의 야심이 꺾일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또 최근 시장 혼란은 단기적일 뿐 근본적으로 글로벌 금융·무역을 재편하려는 의지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 단기적인 고통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는 또 다른 통화 질서의 변화를 목격할지 모른다. 1985년 플라자 합의는 달러 가치의 인위적 조정이 글로벌 경제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든 한국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환율은 강세든, 약세든 장단점이 있다. 환율이 하락한다고 나라가 절단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부 당국이 최대한 급변동을 막고 경제주체들이 안정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환율 변동에도 내성을 갖춘 탄탄한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은 더더욱 시급하고 간절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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