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를 의미하는 ‘민감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14일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올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에 포함할 수 있다. 이 조치의 확정 시점인 4월 15일 이전에 민감국가 지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한미 간 첨단기술 협력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한국의 수출형 연구용 원자로 개발과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등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원자력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국가 안보 관련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와 정보 공유도 제한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두 달 동안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11일 국회에서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해 “비공식 제보를 받고 상황 파악 중”이라고 밝혀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요인으로 북핵 위협 심화 등 국제 정세 급변 속에 한국에서 ‘독자 핵무장론’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 거론된다. 민감국가 목록에는 중국·러시아·북한·이란 등 미국의 적대 국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방인 이스라엘·대만·인도·우크라이나 등도 포함됐다.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불안정한 한국 정치 상황 등도 민감국가 지정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확정 시점 전에 민감국가 지정 철회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총력 외교전을 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한미 동맹 격상과 양국 정부의 신뢰 증진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핵 위협에 대응한 미국의 확장 억제 강화, 한미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 준수 등을 골자로 한 2023년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 정신을 재확인하자고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우리의 국정 리더십을 복원해가면서 한미 경제·안보·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양국 지도자의 신뢰를 제고해야 한다. 그래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사용 후 재처리에 대해 일본 수준의 권리를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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