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로 들어오는 철강 제품의 원산지를 집중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수입 철강재의 원산지 검증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제품 25% 관세 부과가 현실화된 가운데 중국마저 우회 수출을 통한 저가 제품 밀어내기에 나서자 정부가 방어벽을 더 높이 쌓는 것으로 풀이된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중 ‘철강 불공정 수입 대응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앞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분에 25%의 관세가 부과된 다음 날인 13일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 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불공정무역 시도가 더욱 빈번해질 것이 우려된다”며 “이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베트남 등 미국의 고율 관세에 막힌 철강재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국내에 값싸게 들어와 국내 시장가격을 교란하고 철강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철강 업계는 정부에 원산지 모니터링 및 규정 강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주요국은 중국·러시아산 철강재가 제3국을 거쳐 우회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수입 철강재의 조강국을 의무적으로 밝히도록 하고 있다. 철강재를 만들어낸 ‘쇳물’이 어디에서 생산된 것인지 샅샅이 살펴본 뒤 수입 허가를 내준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아직 이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가령 중국이 조강국인 철강재가 태국으로 수출된 뒤 태국에서 국내로 수입될 경우 국내에서는 해당 제품이 덤핑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산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윤희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수입 신고 시스템은 사전 신고 의무가 없고 원산지와 같은 세부 정보 기입이 안 돼 있다”며 “국내 철강사와 2차 제품 제조 기업의 수입 피해 확대, 주요국의 정보 공개 요구 강화에 대응한 관리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철강 업계는 이미 중국발 저가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들여온 철강 제품(MTI 61 기준, 철강재 포함) 수입 규모는 2022년 785만 톤에서 지난해 1028만 톤으로 급증했다. 전체 철강 제품 수입량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 기간 36.4%에서 51.5%로 크게 늘었다. 이에 산업부 무역위원회는 물밀 듯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낮아졌다고 보고 1월 중국산 스테인리스 스틸 후판에 21.62%, 지난달 중국산 후판에 최대 38.02%의 잠정 관세를 각각 부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통상 장벽을 쌓고 있어 우리나라 역시 ‘공세적 방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비관세장벽을 최대한 낮추는 등 다른 나라의 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국내 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과거에는 중국이 과잉생산을 하고 그 제품들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데 대해 우리가 좀 소극적이었지만 미국발 관세 부과 문제가 겹치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자유무역이라는 큰 원칙은 견지하되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 만큼 우리만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비관세장벽을 높여 국내 산업 보호에 나서는 한편 다음 달 2일(현지 시간)로 예정된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방안 발표에는 ‘채점 기준’부터 파악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위급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3일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예외 없이 적용됐지만 상호 관세는 국가·품목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그것(상호 관세)을 시험으로 치자면 나름의 채점 기준이 있을 테니 우선 기준을 파악해 그에 맞게 고칠 것은 고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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