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가득 찬 큰 수조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이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들보다 작았지만 활기차고 성장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수족관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이 작은 물고기가 너무 빠르게 자라면 물이 넘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너는 너무 빨리 자라고 있어. 이대로 두면 수조의 물이 넘칠 수도 있어.” 결국 그들은 작은 물고기를 가두리에 넣고 먹이를 제한했다. 작은 물고기는 더 넓은 수조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반면 이미 수조에서 자리를 잡은 큰 물고기들은 여유롭게 헤엄치며 먹이를 먹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물고기는 성장할 기회를 잃고 가두리 속에서 점점 힘을 잃어갔다. 결국 수조에는 여전히 큰 물고기들만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작은 물고기가 경쟁할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다소 과장된 우화일 수 있지만 최근 가계부채 총량 관리 대책을 바라보는 새내기 은행의 입장이 이와 같을 것이다.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업권별 총량을 관리하는 것은 십분 이해된다. 정부 입장에서야 효과 있는 모든 대책을 동원하고픈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출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강력한 총량 관리가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금리 인하가 대출 수요를 부추길 수 있지만 내수 진작이 더욱 시급한 문제인 데다 가계대출은 다양한 미시적 규제로 대응할 수 있다고 금통위는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효과성과는 별개로 정책이 초래할 부작용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행별로 가계대출 증가율을 전년 대비 일정 수준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성장이 시급한 새내기 은행에는 단단한 가두리가 된다. 성장을 하고 싶어 적극적으로 예금을 유치해도 대출로 운용하지 못하니 비정상적으로 낮은 예대율을 안고 가야 한다.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율을 충족해야 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이라면 치솟는 연체율 관리를 하기도 어렵게 된다.
시장 내 경쟁과 혁신을 저해함도 주목해야 한다. 기존 대형 은행들의 시장점유율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각 은행은 연간 목표가 정해진 뒤에는 그 목표만 채우면 돼 굳이 혁신적인 서비스로 경쟁해야 할 유인도 없게 된다.
가계대출 관리의 기본은 역시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 대출 관행 확립”이다. 이것이 정부가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DSR 중심의 가계부채 관리이다. 불가피하게 총량 관리를 유지하더라도 은행의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대환대출을 현재보다 더 장려해 시장 전체 총량은 유지하면서도 은행 간 경쟁은 활성화하는 방법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예대율을 유지하고 있는 새내기 은행에 대해서는 대출 포트폴리오 정상화 차원에서 일정 부분 높은 증가율을 허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어린 물고기가 성장해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은행 간 경쟁이 촉진되면 금융소비자의 이익 증대로 이어지고 새내기들에게도 검증과 성장의 기회가 된다. 작은 물고기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면 새내기들도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혁신적 서비스로 화답할 것으로 본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보다 정교한 접근을 통해 경쟁과 혁신을 함께 달성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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