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이 추상적인 실체법 조항이기 때문이다. 실체법은 실제 사건이 발생해 소송이 제기된 후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을 때까지는 구체적인 주주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 주주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결국 법원에 맡겨야 하는 만큼 실질적인 주주 보호가 이뤄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
반대로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윤한홍 정무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절차법 규정이다. 회사는 합병 과정에서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했는지 의견서를 내야 하고 계열사 간 합병도 공정가액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등 각종 절차를 지켜야 한다. 절차법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지 않더라도 규정 준수 여부만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주주 입장에서도 실질적으로 권리를 보장 받는 방법이 될 수 있다.
10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총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기업 활동 저해뿐 아니라 실제 주주 보호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준수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이 주주에게 있다는 것이 부담이다. 회사와의 정보 비대칭성으로 집단소송을 하더라도 입증이 쉽지 않을 뿐더러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법 개정안에 담긴 ‘총주주’나 ‘전체 주주’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해당 규정이 기존 회사법 체계를 훼손한다는 논란이 있는 만큼 법적 쟁점을 다투는 과정에서 소송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심지어 회사와 주주,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의무가 충돌했을 때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 회사도 부담이지만 주주도 불확실한 결과를 놓고 장기간 다퉈야 하는 셈이다.
실체법 규정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이것만으로도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결국 소송이 길어지거나 각종 법률 자문이 늘어날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로펌뿐이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상법상 원칙이 바뀌더라도 합병이나 물적 분할에서의 권리 행사를 절차법에서 구현하지 않으면 (주주가치 보호가) 쉽지 않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데 이를 논의하지도 않고 특정 조문만 불완전한 형태로 개정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소송 위험에 노출된 이사들을 보호할 어떠한 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사들은 상법상 특별 배임 등 형사처벌 위험은 물론이고 소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호사 비용이나 손해배상책임 문제까지 노출돼 있다. 결국 이사들이 인수합병(M&A)이나 지배구조 개편 등 회사에 필요한 의사 결정을 제때 하지 못해 기업가치가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의 면책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야 하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으로 투자나 배당에 대한 의견 충돌이 불가피한 만큼 경영 불확실성은 높아질 것”이라며 “회사와 주주 이해 관계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충분한 판례나 유권 해석 등이 나오기 전까지 무사안일주의나 보신주의 경영 풍토가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주주가치 훼손 사례가 여전한 만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상법 개정안보다는 핀셋 규제 방식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합리적 대책이라는 평가다. 상법은 비상장사를 포함해 120만 기업에 무차별적인 영향을 주는 반면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2600곳의 합병 등 일부 거래에만 적용된다. 더불어민주당이 미완성 상태인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은 정치적 계산에 따른 무리수라는 분석이다.
법조계조차 주주가치 훼손 사례가 반복되는 것은 관련 법 조항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갖은 규제를 도입했음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법 하나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기대를 키우는 것은 투자자들을 속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편 상법 개정안은 지난달 26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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