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여파에 따른 경제 둔화 우려에 힘을 쓰지 못하던 뉴욕증시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긍정적 경제상황 평가에 상승 마감했다. 적어도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에 눌린 증시를 파월 의장이 살린 모양새다.
7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222.64포인트(+0.52%) 오른 4만2801.72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31.68포인트(+0.55%) 오른 5770.2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26.97포인트(+0.70%) 상승한 1만8196.22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증시는 2월 고용보고서 발표와 함께 하락 출발했다. 미국 노동부는 이날 2월 비농업 부문 일자리가 15만1000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전월 12만5000개 보다 늘었지만 다우존스의 전망치 16만개를 하회했다. 실업률은 4.1%로 1월 4.0%에서 상승했다. 예상치는 4.0%였다.
시장은 이날 고용보고서가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계해왔다.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 만큼 고용이 급랭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경제 불안감은 이어졌다. BCA리서치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인 피터 베레진은 “투자자들은 더 나쁜 것을 기대했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반응은 모호하게 긍정적이었다”며 “이 일자리 보고서를 보면 경기 침체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경기 침체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파월 의장이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점심 께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경제는 괜찮다. 우리는 실제로 (통화정책과 관련)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평가하면서 증시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날 상승은 마감했지만 S&P500은 주간 3.1% 떨어지면서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저조한 주간 실적을 기록했다.
파월도 불확실성 주목…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캐나다 목재에 250% 관세”
투자자들이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 중 “경제는 괜찮다”고 평가한 대목에 주목했지만 파월 의장의 전반적인 발언 취지는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이런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를 서둘러 인하할 필요 없이 오랫동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파월 의장의 결론이었다. 파월 의장은 “만약 관세의 결과가 가격을 한번만 올리는 간단한 경우라면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며 “다만 (가격의 영향이) 연속적인 일로 바뀌고 상승폭이 크다면 이는 중요한 일이 된다”고 말했다. 관세가 생각보다 길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끌어올려 통화정책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그는 “서두를 필요는 없으며, (현재 금리 수준은)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확실성을 부채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캐나다는 다년간 목재와 낙농 제품에서 우리를 갈취해왔다”며 “(캐나다는) 목재와 낙농제품에 대해 250%의 관세를 부과하며 우리 농가를 이용해왔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오늘 또는 다음 주 월요일(10일)이나 화요일(11일) 동일하게 부과할 것"이라며 캐나다산 목재와 낙농제품에 250%의 관세를 부과할 것임을 시사했다.
슬레이트스톤웰스의 케니 폴카리는 “지금으로써 확실한 것은 불확실하다는 점 밖에 없다”며 “투자자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충분히 분산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우선주의’ 위해 혼란 감수하겠단 베센트 “트럼프 풋 없다”
현재 금융시장 불안의 밑바탕에는 과연 ‘미국 우선주의’가 증시에 좋은 결과를 낼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있다. 관세 부과가 본격화된 지난 4일 이후 주가 하락이 본격화하며 트럼프 대통령 당선 확정(11월 5일) 이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것이 현재 트럼프 정책에 대한 증시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추진하는 일련의 정책이 결국 미국 경제 보탬이 된다는 메시지를 오히려 강화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는 커지고 있다. 케빈 하셋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2월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1만개 증가한 점을 들어 “정부 고용과 지출을 줄이며 제조업 고용을 늘릴 것”이라며 “이미 2월 일자리 보고서에서 그런 방향으로 전환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이날 CNBC에 출연해 “시장과 국가경제는 정부 지출에 중독돼 있다”며 “해독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센트는 증시가 좋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을 조절할 것이란 이른바 ‘트럼프 풋’ 가능성도 일축했다. 그는 “풋은 없다”며 만약 우리가 좋은 정책을 가지고 있다며 시장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트럼프가 증시를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트럼프의 우선순위가 ‘주가 관리’보다 ‘미국 우선주의’에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트루이스트파이낸셜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키스 러너는 “트럼프가 갑자기 무역 비둘기가 되거나 거래 성사를 위해 상대국에 득점을 양보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혼란속에서 미국 국채 가격부터 가상자산, 금까지 주식을 제외한 주요 금융 자산군이 하락했다. 2년 물 국채 금리는 파월 의장이 “기다려야 한다”는 발언의 의미를 고려해 3.5bp(1bp=0.01%포인트) 상승한 4.006%에 거래됐다. 금리 동결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반영됐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bp오른 4.308%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은 3.1% 하락한 8만6352달러에, 이더는 2.85 떨어진 2139달러에 거래됐다. 비트코인 전략 비축 행정명령도 경제 불확실성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안전 자산인 금도 0.2% 하락한 온스당 2920달러에 거래됐다.
뉴욕유가는 상승했다. 미국 경제가 양호하다는 파월 의장의 평가에 안도하며 매수세가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보다 0.68달러(1.02%) 오른 배럴당 67.0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은 전장보다 0.90달러(1.30%) 뛴 배럴당 70.36달러에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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