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군집붕괴현상’으로 전세계에서 꿀벌의 개체수가 급감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꿀벌과 마찬가지로 수분매개활동을 하는 나비의 개체수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충제 사용과 기후변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미국 전역에서 나비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간하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미국에서 지난 20년동안(2000년~2020년) 나비 개체 수가 평균 22%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1260만 마리 이상의 개별 나비를 기록하고, 미국 전역에서 전체 및 종별 나비 개체 수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총 342종의 나비 중 114종이 유의미한 개체수 감소세를 나타났다. 그 중 107개 종은 절반 이상으로 개체 수가 감소했으며, ‘플로리다 화이트’ ‘허미스 카퍼’ ‘테일드 오렌지’ 등의 종은 개체 수가 50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들어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장 감소가 심각하게 나타난 지역은 미국 남서부다. 이 지역은 기온이 높고 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는데 최근 가뭄이 심해지면서 나비 생태계가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나비 개체수가 이처럼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서식지 파괴, 살충제, 기후변화 등이다. 지구 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나비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계절 주기가 변하면서 번식과 이동 패턴에도 변화가 생긴 것. 나아가 농약 사용 증가와 서식지 파괴도 나비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강력한 농약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비의 애벌레가 먹이로 삼는 식물들이 사라지고, 성체 나비 또한 농약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다.
나비가 사라지면 생기는 변화
나비는 꿀벌과 함께 꽃가루를 옮겨주는 중요한 수분 매개 곤충이다. 나비와 꿀벌이 사라지면 결국 식물의 번식도 영향을 받는다. 나비가 줄어들면 특정 식물군의 개체 수도 감소하게 되고, 이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생존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수분매개 곤충이 사라지면 오이, 참외, 딸기 등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일과 채소를 수확하기 어려워져 가격이 크게 비싸진다. 또한 나비 애벌레는 여러 조류와 포식 곤충들의 중요한 먹이가 되기 때문에, 나비 개체 수 감소는 곧 다른 생물군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에서 나비가 급감한 지역에서는 조류 개체 수도 함께 감소하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다만 희망은 있다. 나비들은 세대 시간이 짧기 때문에 개체수 회복이 비교적 쉽다. 연구팀은 나비의 개체수를 보호하기 위해 야생화를 심거나, 살충제 사용을 줄이거나 뒷마당 일분의 잔디를 깎지 않고 내버려 두는 등 작은 행동으로 나비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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