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 어피니티에쿼니티파트너스·싱가포르투자청(GIC) 간 ‘풋옵션(특정 가격으로 장래에 주식을 팔 권리)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7년 간의 갈등이 해소 수순에 들어갔다. 교보생명은 FI와의 분쟁을 조속히 마무리짓고 지주사 전환 작업 등 본격적으로 장기 성장 전략 수립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다만 어피니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IMM 프라이빗에쿼티(IMM PE)와 EQT파트너스는 중재 결과를 보겠다는 입장이어서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어피니티와 GIC는 교보생명 지분 각각 9.05%(4350억 원)와 4.5%(2150억 원)에 대해 주당 23만 4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니티 지분은 SBI그룹이 인수했고, GIC는 신한·한국투자증권이 만든 특수목적회사(SPC)에 매각했다. 과거 교보생명 지분을 보유했던 SBI그룹은 이번에 신 회장의 백기사로 등판했다.
어피니티와 GIC 매각 단가는 투자 원금인 24만 5000원(액면분할 전 기준)보다는 4.5% 낮은 수준이다. 다만 양사가 그간 교보생명에서 받은 배당금 등을 고려할 경우 자금 회수(엑시트) 측면에서 일부 수익을 봤단 분석이다. 어피니티 측은 “모든 이해당사자들과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와 협의를 거쳐 합의점에 이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피너티컨소시엄(GIC·EQT·IMM PE)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 2000억 원(주당 24만 5000원)에 인수했다. 양측은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을 경우 신 회장이 어피너티컨소시엄 지분을 사들이기로 계약했다. 2018년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 회장에게 주당 41만 원(총 2조 122억 원)에 24% 지분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신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국제중재를 거친 끝에 신 회장이 어피너티컨소시엄의 지분을 매입하는 절차를 밟게 됐다.
애초 컨소시엄은 신 회장이 지정하는 기관의 시장공정가치(FMV) 산정 결과를 기다렸다. EY한영이 FMV를 산정 중이다. 중재 판정에 따르면 이들의 풋옵션 행사 가격인 41만 원과 신 회장 측이 제시할 가격 간 격차가 10% 이상 발생할 경우, 컨소시엄이 지정한 제3의 기관이 가치평가를 다시 하게 돼 있다. 중재판정 결과에 따라 신 회장은 시장공정가치(FMV)와 FI들의 투자 원금인 24만5000원 중 높은 쪽으로 풋옵션 가격을 정해야 한다.
IMM PE·EQT와도 풋옵션 분쟁이 타결되면 교보생명은 지연됐던 금융지주사 전환,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진행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조대규 교보생명 대표는 “주주 간에 적절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합리적 가격에 협상이 성사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 작업과 미래지향적 도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2023년 2월 이사회에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 설립 안건을 보고한 바 있다. 생명보험업게에서는 첫 번째, 전체 보험업계에서는 메리츠 화재에 이어 두 번째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전환을 하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하다. 특별결의는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데 그간 FI와 분쟁 상황에서는 3분의 2 이상 동의를 확보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신창재 회장이 과반 지분을 확보하게 됐고, 향후 남은 FI들과의 분쟁 상황도 빠르게 종료돼 우군을 더 확보한다면 지주사 작업은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지주사 전환이 3년 가까이 늦어지면서 교보그룹의 성장은 제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구 감소와 저출생 등으로 보험 가입률이 떨어지면서 생명보험사 업황은 장기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발표할 당시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 생명 중심의 지배구조로는 각종 법규상 제약으로 그룹의 장기성장전략 수립, 추진에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라고 전환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마지막으로 남은 EQT와 IMM PE는 FMV 결과까지 받아본다는 입장이다. 애초 FMV는 지난 1월20일까지 산정돼 제출되기로 했지만, 한달 보름이 지난 현재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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