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000270)가 연간 50만 대 생산 가능한 미국 공장의 완성으로 연간 120만 대 생산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지 생산능력을 대폭 늘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가 예고한 수입차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에 대응하고 사업 불확실성을 걷어내려는 전략이다. 현대차(005380)그룹은 트럼프 1기 때 76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을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을 준공식에 초청한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7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이달 내로 미국 조지아주에 세운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을 진행한 뒤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세운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인 이곳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현대차 아이오닉5의 시험 생산에 돌입하며 완전 가동을 준비해왔다.
메타플랜트 생산 물량은 준공 후 대폭 확대된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 물량은 중장기적으로 현지 공장에서 조립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울산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미국으로 수출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연간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메타플랜트가 준공되면 이런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된다. 현대차는 상반기 미국에서 출시할 예정인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9도 메타플랜트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는 메타플랜트 생산 모델에 현지 수요가 높은 하이브리드차를 추가하고 연간 생산량도 50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 앨라매마주 몽고메리 공장(연 36만 대)과 기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연 34만 대)을 합쳐 미국에서만 연간 120만 대의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된다.
현대차·기아는 메타플랜트를 포함해 미국 생산 거점을 최대한 활용해 수입차를 겨냥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 피해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트럼프 정부는 다음 달 2일부터 각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 등을 고려해 ‘상호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자동차·반도체 관세 부과 등도 예고한 바 있다. 미국 완성차 업계의 의견을 감안해 멕시코·캐나다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적용은 다음 달 4일로 한 달 미뤄졌지만 우회 수출로 타격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멕시코에 공장을 둔 기아는 이에 준중형 전기 SUV인 EV6의 미국 생산 시점을 올 1월로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는 트럼프 행정부에 메타플랜트 준공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부각하며 우호적인 경영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에 대한 투자는 트럼프 1기 정부(2017년 1월~2021년 1월) 시절 결정돼 이번에 결실을 맺은 것인데 공장 건설에만 76억 달러(약 11조 원) 이상이 투입됐다. 대규모 투자로 현지 일자리도 대폭 늘게 됐다. HMGMA 준공만으로 8600개 넘는 직접 일자리가 창출되고 인근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1만 4000여 개로 늘어난다.
성 김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과 민간 경제사절단으로 백악관을 방문해 고위관계자를 만나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현황과 고용 창출 효과 등을 직접 설명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1기 시절 정책이 메타플랜트 투자 결정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달 준공식에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을 정중히 요청했다. 김 사장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서도 메타플랜트 준공식 참석을 타진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는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조지아주에 두 번째 전기차 전용 부품 공장을 가동해 전기차 구동(PE) 시스템과 배터리 시스템(BSA) 등을 공급한다. 2030년까지 13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를 투입해 5곳의 부품 생산 거점도 구축한다. 현대제철도 미국에 생산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생산 증가는 국내 생산 및 수출 물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국내에서 미국으로 101만 5005대를 수출했다. 국내 생산량(340만 6075대)의 29.8%에 달하는 규모다. 전체 수출 물량(218만 698대) 중 미국 비중은 46.5%로 현지 생산이 늘면 국내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구조다. 현대차·기아는 수출길 다변화와 판매량 확대로 국내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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