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3년 전 인수했던 LIG 지분을 최근 모두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KCGI는 당시 구본상 LIG 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보유하던 지분을 총 1000억 원에 사들이며 기업공개(IPO) 조건을 달아뒀다. 그러나 LIG그룹 내에서 중복상장 논란을 의식하며 관련 계획을 접자 해당 지분을 다른 기관에 모두 매각하고 투자금 회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CGI는 LIG 지분 25%를 다른 투자자에 매각하는 절차를 완료했다. KCGI는 2021년 말 만기 5년짜리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해 구본상 LIG 회장과 구본엽 부회장으로부터 이 지분을 1000억 원에 사들였다. 이 때 LIG 기업가치는 4000억 원으로 평가됐다. 조세포탈 혐의로 수사 받던 구 회장과 구 부회장은 추징금 부과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현금 확보 차원에서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당시 알려졌다.
3년 전 KCGI는 원활한 투자금 회수를 위해 계약서에 LIG가 2025년까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상장이 불발될 경우 대주주 지분까지 끌어와 경영권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한 '콜앤드래그'(Call & Drag) 조항도 삽입해뒀다. 반대로 구 회장과 구 부회장은 KCGI에 일정 수준 이자를 지급한 뒤 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콜옵션을 확보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이 같은 계약에 따라 LIG와 KCGI는 최근까지 국내 증권사들과 상장 실무 협의를 이어왔다. 그러나 한국거래소 심사에서 자회사 중복 상장 논란을 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자 IPO 계획을 중단했다. 현재 LIG 자회사인 LIG넥스원(079550)과 이노와이어리스(073490)는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각각 상장 돼 있다. LIG가 별다른 영업 활동 없이 여러 자회사 지분을 보유하며 출자 사업만 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대주주들이 개인 목적으로 현금을 마련하고자 외부 자금을 끌어다 썼는데, 이를 기업공개를 통해 갚겠다는 전략도 컨설팅 과정서 반발에 부딪힌 것으로 파악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중복 상장 이슈는 물론 개인투자자 주주권리에 갈수록 민감하게 대응하는 한국거래소의 문턱을 결국 넘지 못한 것”이라며 “실무 협의를 진행한 증권사들도 LIG의 상장은 쉽지 않다고 판단해 주관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자 구 회장과 LIG 측은 KCGI의 콜앤드래그 조항이 발동되기 전 서둘러 외부 투자자를 찾았고 결국 지난달 구주 거래를 성사시켰다. LIG와 KCGI가 수년 간 맺어온 원만한 관계도 이번 거래에 앞서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KCGI는 2021년 LIG넥스원 주식으로 교환가능한 LIG 교환사채(EB)에 1000억 원을 별도 투자해 큰 수익을 낸 바 있다. 이에 앞서 2018년엔 LIG와 이노와이어리스 경영권을 함께 인수했고 이후 LIG에 자사 지분을 모두 넘기며 투자금을 회수했다.
IB업계에선 이번 LIG그룹의 상장 계획 중단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주주가치 제고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한 증권사 IPO 본부장은 “LG에너지솔루션(373220) 물적분할로 촉발된 중복 상장 논란은 지금도 여러 기업들의 IPO 추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에식스솔루션즈, 이링크 등 자회사들을 추가 상장할 계획인 LS(006260)그룹 등이 전보다 높아진 거래소 문턱을 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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