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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뒤늦은 혁신, 과연 성공할 것인가 [이민형의 과학기술혁신 짚어보기]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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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다시 살아날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19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린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해 이후 30년 동안 회복하지 못한 채 초장기의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이 회복되고 일부 기업들의 혁신경쟁력이 살아나면서 경제부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 일본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강, 전자제품, 자동차와 같은 주요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할 만큼 강력한 혁신경쟁력을 나타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일본경제는 급격히 침체되기 시작한다. 그 계기는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엔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한 플라자 합의(1985년)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급격한 엔고 상황이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 하락에 영향을 미치자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양적 완화정책을 펼쳤고 넘치는 돈이 몰린 부동산과 주식의 자산버블이 꺼지면서 일본경제가 침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당시 일본과 함께 플라자 합의의 대상이었던 독일 경제가 2000년대 초반에 회복되었던 것과 달리 일본의 경제침체는 유독 길게 지속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오랜 시간 침체된 원인으로는 노동생산성 부진, 관치금융의 후진성, 기업의 혁신부족과 같은 경제구조적 문제에서부터 고령화와 저출산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들까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 혁신이 성장의 원천인 점을 고려할 때 일본혁신시스템의 경쟁력 하락이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1980년대 영국의 혁신경제학자 프리만(Christopher Freeman)은 서유럽을 능가하는 일본 경제의 성공 원인으로 일본의 국가혁신시스템 경쟁력에 주목했다. 특히 일본 통상산업성(MITI)이 강력한 산업정책을 통해 전략산업을 발굴하고 해당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강조한다. 이러한 일본의 국가적 협력체계는 국가혁신시스템이라는 새로운 개념 등장의 토대가 될 만큼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혁신환경이 변화하면서 과거 일본혁신시스템이 가진 특징과 장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점으로 나타난다. OECD(2006)의 일본혁신시스템에 대한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초까지 일본기업의 기술혁신은 다른 나라의 제품과 공정을 모방하는 공정혁신과 점진적 제품혁신 중심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으며 이런 혁신은 기업 내부에 한정된 폐쇄적 혁신활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세계화에 따른 개방형 네트워크 지식 증가에 폐쇄적인 일본 기업들이 대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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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혁신시스템의 복잡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정책개입도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혁신시스템은 연구개발 투자가 높지만 성과 창출이 낮았다. 여기에는 산학연 협력의 경직성과 시장의 높은 규제, 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 등이 연계된다. 정부정책은 과학과 기술에 집중되고 교육, 제품과 노동시장, 경쟁정책과 연결이 약해 혁신을 강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혁신시스템을 지배해 온 사회문화적 관성은 기본 다지기에 충실하지만 변화 대응이 느리고 위험 회피적이라는 특징이다. 여기에 경직적이고 관료화된 조직문화가 기업까지 퍼져있다. 이러한 속성은 소재부품처럼 오랜 시간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분야 발전에는 유리하나 파괴적이고 빠른 혁신속도를 가진 기술 분야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본이 IT기술 수용에 취한 소극적인 태도와 디지털 전환 지체는 기업경쟁력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혁신 기반을 약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여년에 걸쳐 과학기술 중심에서 혁신까지 확대하는 정책전환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개편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인 혁신시스템 변화를 창출하지 못하였다. 국가혁신시스템을 규정하는 구조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과감한 정책혁신과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선도형 혁신으로 시스템 전환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전략적 혁신 역량과 리더십이 부족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일본 정부는 혁신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뒤늦게 디지털사회 대전환을 추진하고 경제안보전략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부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가 혁신리더십을 발휘해 새로운 민관 협력관계를 도모하는 모습이다. 아직 그 성과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혁신성과 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길에 들어섰다. 우려스럽게도 고령화, 인구감소 등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혁신 규제, 투자 대비 낮은 혁신성과 등 혁신시스템의 문제들까지 일본과 유사하다. 구조화된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관성을 깨는 실질적이고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 혁신시스템의 한계를 넘는 획기적인 제도혁신과 시스템 전환 창출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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