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의 밸류업 시행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비과세 대상인 ‘감액 배당(자본 감액 배당)’을 내세우는 상장사 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서만 벌써 13개 코스피 상장사가 감액 배당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감액 배당은 일반 주주는 물론 지배주주에게도 유리한 주주 환원책이라며 앞으로도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대신증권(003540) 리서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한 달 동안 주총에서 감액 배당을 부의안건으로 상정한 코스피 상장사는 13개로 전년 동기(8개) 대비 62.5% 증가했다. 율촌(146060), 아이디스(143160), 시노펙스(025320) 등 코스닥 상장사 7개사도 이달 예정된 주총 안건으로 감액 배당을 상정했다.
감액 배당은 기업이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주주에게 배당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보통주 발행 초과금 등 자본준비금 일부를 감소시키는 대신 동일 금액을 이익잉여금으로 옮겨 배당 가능한 이익으로 전환한 뒤 주주들에게 분배하는 식이다. 당기 이익이나 미처분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삼아 분배하는 일반 배당과는 달리 감액 배당은 자본 항목을 줄여 조성한 재원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형태라 비과세 혜택이 발생한다.
가령 일반 배당의 경우 기업이 배당금 1000원을 책정해도 주주들은 배당 소득세 15.4%를 제외한 846원을 받게 되지만 감액 배당의 경우는 배당금 전부를 온전히 다 수령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같은 재원을 가지고 더 많은 분배금을 주주들에게 할당할 수 있어 주주환원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주주들도 감액 배당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메리츠금융지주(138040)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3년 감액 배당을 처음 도입한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이라는 호재와 함께 비과세 혜택을 노리는 고액 투자자들이 몰리며 지난해 한 해 동안 주가가 76% 폭등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성공 사례에 힘입어 감액 배당에 관심을 보이는 상장사 수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주총에서 감액 배당을 안건으로 상정한 상장 기업 수는 2022년 26개에서 지난해 기준 70개로 2년 새 169% 급증했다.
다만 일각에선 감액 배당 방식을 두고 ‘주주 간 분배 왜곡’이라는 논란도 없진 않다. 유상증자를 통해 직접 출자한 주주들과 달리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인 주주는 배당의 원천이 되는 자본잉여금 발생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논리에서다.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 셀트리온(068270)은 지난달 7일 감액 배당을 준비한다고 공시한 이후 주가가 8% 넘게 급등했다. 우리금융지주(316140) 역시 같은 날 공시를 통해 자본잉여금 중 3조 원을 이익잉여금 계정으로 이입해 올해 회계연도 결산 배당부터 감액 배당을 실시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2주간 주가가 10% 넘게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감액 배당 증가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감액 배당은 고액 상속세나 증여세 대비에 유리하고 지분 매각 없이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승계 과정에 큰 이점이 된다”며 ”‘오너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과 더불어 ‘일반 주주의 순수익 극대화’라는 두 가지 효과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인기를 끌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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