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가 유통 업계 2위 홈플러스를 인수한 지 10년 만에 전격 회생절차에 넘기면서 유통 업계뿐만 아니라 투자 업계조차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MBK는 홈플러스를 2015년 7조 2000억 원에 인수한 뒤 주요 점포를 매각해 최소 4조 원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대형 PEF로서 자금 여력이 탄탄하고 정상 영업 중인데도 독자 생존을 포기한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수 당시 5조 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 받아 인수 자금을 충당한 것이 부메랑이 됐다는 분석이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는 현재까지 22개 점포를 줄여 거둔 4조 원으로 인수 당시 빌린 자금을 갚았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 2000억 원에 인수하면서 4조 3000억 원을 홈플러스 주식을 담보로 삼았다.
MBK가 알짜 점포를 매각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전국 매출 상위 5위였던 안산점을 부동산 개발 업체 화이트코리아에 4300억 원을 받고 넘겼고, 부산 해운대점(4000억 원), 대전 둔산점(3800억 원), 부산 가야점(3500억 원) 등을 차례로 팔았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141개에 달했던 점포는 지난달 기준 126개까지 줄었다. MBK에 따르면 126개 중 10개 점포는 매각 후 재임대(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넘어가 현재 홈플러스 보유 자산으로 분류되는 점포는 116개로 파악된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 당시부터 부동산 자산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인수 금융에 참여한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당시 인수는 부동산 거래에 가까웠다”면서 “MBK는 물론 인수 금융을 지원한 은행 등 금융기관 역시 부동산 담보를 토대로 기업가치를 매겼다”고 전했다.
이를 고려해도 이후 오프라인 유통 업계의 침체는 MBK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김병주 MBK 회장은 2022년 본지 인터뷰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홈플러스를 꼽았다. 그는 “유통 산업 자체가 경쟁이 치열한데 특히 ‘테크(기술)’가 부각돼 온라인 쇼핑이 주류가 됐다”면서 “(홈플러스에) 테크 적용을 좀 더 신속히, 공격적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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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 매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려온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1조 2000억 원을 리파이낸싱이라는 명목으로 지원 받으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1년 만에 회생에 들어가면서 시장의 관심은 메리츠의 담보권 행사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는 일반 기업회생과 달리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직접 투자한 게 아니라 홈플러스를 지배하는 서류상 회사(SPC)에 투자했기 때문에 법원 관리 대상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한 회계법인의 기업 구조조정 담당자는 “MBK나 메리츠 등 대형 투자자는 손실에서 비껴났다”고 비판했다.
부동산 자산가치만 5조 원에 달하는 홈플러스는 진로그룹·대한통운 등 역대 법정관리 기업 중 총자산 기준 가장 덩치가 크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잦아들던 PEF의 ‘먹튀’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 기관투자가는 “역대 최대 규모의 회생기업으로 업계에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며 “앞으로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마트·롯데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에 대한 대출이나 투자는 더욱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신용등급 하락으로 기업어음(CP) 파이낸싱이 힘든데 3개월물은 돌아올 때 회사 현금으로 갚아줘야 해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홈플러스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청산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생 결정에 대해 MBK 측은 백의종군의 자세로 회생법원 주도 아래 홈플러스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협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용평가사가 지난달 28일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강등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MBK의 설명이다. 대형마트 특성상 홈플러스가 월 1회 대규모 매입 대금을 지급하고 매출 대금은 매일 들어오는 격차를 보완하기 위해 활용한 기업어음(CP) 발행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신평사들은 영업 부진 장기화와 자산 매각 노력에도 과중한 재무 위험, 중단기 내 영업 실적 및 재무구조 개선이 불확실한 점을 등급 하향 조정 이유로 들었다.
MBK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희생절차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향후 잠재적 단기 자금 부담을 선제적으로 경감해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금융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전액 변제되고 임직원들의 급여나 임금 지급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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