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한의사의 엑스레이(X-ray) 기기 사용 이슈가 보건의료계 또다른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하다 기소된 한의사가 최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발단이다. 한의사들이 법원의 판결을 빌미로 보건복지부에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에 한의사를 추가해 달라고 요구하자 의사들은 "판결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며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5일 입장문을 내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통해 의료법체계를 흔들겠다는 대한한의사협회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의협이 발끈하고 나선 배경은 이날 오전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의 엑스레이(X-ray) 사용을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한의협은 지난달 수원지방법원이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환자 진료에 사용하다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 판결과 같은 무죄를 선고한 것을 근거로 한의진료에 엑스레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현행 보건복지부령인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의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 기준에 한의사가 누락돼 있어 한의원에 엑스레이를 설치해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의협은 "판결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주장에 불과하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해당 판결은 엑스선 골밀도 측정기인 'BGM-6' 기기를 사용한 한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의협은 재판부가 무죄를 판결한 이유는 기기에서 자동 추출된 성장 추정치를 한의학적 진료에 참고 또는 환자에게 제공하는 수준에 그쳐 보건위생상 위해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 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의 허용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대법원이 왜 한의사가 방사선 안전관리자가 될 수 없는지를 명백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한의사들이 재판부의 판단을 한의사의 X-ray 사용이 가능하다는 궤변으로 오도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특정 의료기기의 사용이 단순한 선언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국민 누구나 선언만으로 면허 없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엑스레이 기기 등 현대의료기기를 둘러싼 양한방 의료계 갈등은 해묵은 문제다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한의협이 법원 판결의 일부 사실만을 이용해 자기들 이익에 맞게 왜곡하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고 규탄했다. 공의모는 “한의협이 해당 사건에서 피고인 한의사가 골밀도 검사기를 성장판 확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단순 엑스레이’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며 “골밀도 검사는 원래 골다공증과 골감소증 진단을 위해 개발된 것으로 성장판 확인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번 한의협 기자회견은 법원 판결의 취지를 왜곡해 단순 엑스레이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일 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 대한 무관심과 한의협의 이권 추구에 기반한 행위"라며 “한의사에게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 책임자 권한 부여를 요구하는 한의협의 주장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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