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경제 중심 정당”이라며 연일 우클릭 보폭을 넓히고 있지만 정작 주52시간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대표의 성장 담론이 말의 성찬이 아닌 입법 과제 실천 등과 같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우클릭했다고 비난하는데 민주당은 원래 경제 중심 정당”이라며 “경제와 성장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물론 당내 대권 주자들까지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유지해야 한다”며 최근 이 대표의 우클릭 행보를 비판하고 나서자 성장 담론을 적극 설파하며 반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경제 문제에 관한 한 민주당이 아무리 부족하고 못나도 국민의힘보다는 분명히 낫다”며 “민주당이 집권하면 코스피 지수도 3000대를 찍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민주당은 성장 동력 찾기에도 나서고 있다. 이날 인공지능(AI)을 시작으로 로봇·방위·바이오 등 핵심 전략산업의 발전 방안 수립을 위한 경청 간담회를 잇따라 실시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24일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에도 직접 출연해 주식시장 선진화 방안 등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대표가 연일 성장론을 띄우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입법 과제들은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를 두는 반도체특별법의 경우 이 대표는 직접 주재한 토론회에서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노동계와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다시 한발 물러섰다.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열어 반도체특별법을 심사했지만 주 52시간 적용 제외 문제를 놓고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보류됐다. 이에 따라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불발됐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주 52시간 이상 노동에 대한 수당 지급 등의 세부안이 필요하다”며 “재계가 보완 장치를 만들어 직접 정치권을 설득할 차례”라며 사실상 원점 상태로 돌아갔음을 인정했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를 통과한 임시 투자 세액공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소위 문턱은 넘겼지만 중견·중소기업만 적용하고 대기업은 제외한 탓에 세액공제 혜택을 기대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이 대표가 공제액 상향 가능성을 내비치며 기대를 키운 상속·증여세 개정안도 말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상속세 일괄공제를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공제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최고세율 인하와 최대주주 할증 폐지, 자녀공제 확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 대표가 성장 담론을 내세워 중도층 공략에 나섰지만 석 달간 30%대의 지지율에 갇혀 있다”며 “말뿐인 성장 담론으로는 중도층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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