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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LG엔솔, 과천에 배터리소재 연구기지…캐즘에도 미래 배터리 올인

전기차 캐즘 위기 속 연구개발 확대

과천R&D캠퍼스 증축…인력 네자릿수로

1995년 이차전지 뛰어들며 '집념'

구본무 선대회장 "길게보고 투자하라"

기술력 향상 집중 미래 슈퍼사이클 대비

경기 과천시 주암동 LG에너지솔루션 과천 R&D캠퍼스 정문. 배터리 소재 연구시설을 새로 짓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노해철 기자




지난 1월 15일 LG에너지솔루션의 경기 과천 R&D캠퍼스. 정문에 들어서자 어림잡아 건물 3층 높이의 철판 울타리 안은 흙 먼지를 날리며 공사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지반을 다지고 평탄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2단계의 증축을 거쳐 미래 기술 거점으로 한 단계 진화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연구시설 확충 등 투자를 지속하며 다가올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에 대비하는 것이다. 과천 R&D캠퍼스에는 배터리 성능·안전성·수명을 좌우하는 소재를 분석·실험하는 공간이 새롭게 세워진다.

새 건물은 축구장 3개 규모에 달하며 인력 규모도 현재 800여 명에서 네 자릿수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과천 R&D캠퍼스는 지금까지 차세대 배터리와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개발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는 배터리 소재 분야로 범위를 넓혀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는 핵심 기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캐즘 여파로 실적이 주춤하는 상황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연구개발비는 매년 꾸준히 늘어 2023년(1조 374억 원) 처음 1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4분기 영업 적자(-2255억 원)를 내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연간 기준 1조 1000억 원 넘는 연구 개발비를 집행해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배터리 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퍼스트 무버’를 탄생하게 한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은 일찌감치 2차전지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1995년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뒤 연간 2000억 원 적자를 내자 ‘돈 먹는 하마’란 오명과 함께 “사업을 그만 접자”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넘쳐났다. 구 선대회장은 굴하지 않고 “길게 보고 끈질기게 연구하다 보면 반드시 성과가 날 것”이라며 독려했고 이에 힘입어 연구진들을 밤낮으로 매달렸다.

그 결과 LG화학은 2004년 배터리 안전성을 끌어올린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을 독자 개발한 데 이어 2009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배터리를 독점 공급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소니와 산요, 파나소닉 등 유수의 기업들과의 경쟁을 뚫고 선두 주자로 올라선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후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10위권 완성차 업체 중 9곳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려왔다.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학과 교수는 “K-배터리가 글로벌 강자로 자리 잡은 것은 미래를 내다 본 리더의 비전과 확고한 의지, 수많은 실패에도 도전한 연구진들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재 위험없는 배터리 만들자"…안전 분리막으로 EV시대 개척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배터리 업황 둔화에도 과천 R&D 캠퍼스를 증축하고 배터리 소재까지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것은 위기에 투자를 확대하며 연구실 불을 끄지 않았던 30년 기술 뚝심의 전통에 기반한다. 2차전지 개발의 선구자였던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에 이어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현재가 아닌 미래에 주목하며 과감한 투자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는 전기차 수요 정체와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배터리 업체의 경쟁력 강화에도 담대하게 기술력을 쌓아 올려 다가올 ‘슈퍼 사이클(초호황)’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는 포부를 불태우고 있다.



◇위기 속 투자…차세대 배터리 소재 연구거점 구축=최근 방문한 LG에너지솔루션의 과천 R&D캠퍼스는 건물 증축을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곳에는 총 2단계 공사로 축구장(국제규격 기준 7140㎡) 3개 크기의 연구시설(연면적 약 2만 2425㎡)이 추가로 들어선다.

2015년 지어진 과천 R&D캠퍼스는 리튬황배터리·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뿐만 아니라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관리하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개발하는 연구거점이다. 증축을 마치면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필요한 소재를 분석 및 실험하는 시설까지 갖추면서 기술 담금질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르면 올 해 1분기에 착공해 완공 시점은 2029년 이후로 잡았다.

연구개발 인력도 확충한다. 과천 R&D캠퍼스에는 현재 약 800명의 인력이 상주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향후 새 연구시설과 함께 배터리 소재 관련 인력을 충원하면 네 자릿수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천 R&D캠퍼스와 도보로 10분 거리인 LG전자 서초R&D캠퍼스의 6개 층도 LG에너지솔루션 개발 인력으로 채워져 기술 역량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에만 세 곳의 연구시설(과천 R&D캠퍼스·마곡 R&D캠퍼스·대전기술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에서 직원들이 롱-셀(Long Cell) 배터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소재 분야에 기술력 결집에 나서는 것은 미래 제품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핵심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소재에 따라 배터리 성능과 안전성, 수명, 충전 속도 등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2030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전고체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에 사용하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교체해 에너지 밀도는 높이고 화재와 폭발 위험은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전고체배터리에 얇은 실리콘층을 입혀 충전 속도를 10배 향상시키는 기술을 셜리 멍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개발했다. 저렴하고 최대 효율을 내는 소재를 개발한다면 배터리 가격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친환경 규제에 따라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이 강조되고 있다”며 “LG에너지솔루션이 자원 선순환 체계 구축이란 비전 아래 재활용 가능성을 극대화한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고(故) 구본무(사진 오른쪽) LG그룹 선대회장이 2010년 7월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전세계 없던 분리막으로 전기차 시대 ‘바짝’=전기차 배터리 등 2차전지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적 강자로 올라선 배경에는 30년 넘는 기술 뚝심이 자리한다. LG그룹의 2차전지 사업 역사는 1992년 구 선대회장의 영국 출장길로부터 시작된다. 한 번 쓴 후 버리지 않고 다시 충전해 사용하는 2차전지를 처음 접한 구 선대회장은 한국에 돌아와 럭키금속에 연구개발을 주문했다. 1995년 LG화학이 2차전지 사업을 넘겨받았지만 일본 업체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진 기술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수천억 원대 적자로 경영진들은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구 선대회장은 “길게 보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며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다.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착수 약 10년 만에 개발에 성공한 ‘안전성강화분리막(SRS)’의 개발은 2차전지 사업에 회의적인 분위기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분리막은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소재로 안전성 측면에서 핵심으로 꼽힌다.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면 화재로 이어지는 배터리의 최대 약점을 보완할 수 있어서다. 당시 노트북과 휴대폰 등에 탑재한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얇은 비닐 형태의 폴리올레핀 분리막이 채택됐는데 열에 매우 취약했다. 배터리 온도가 130도를 넘으면 분리막이 녹으며 폭발해 버린 것이다.

LG화학이 2004년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SRS는 이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세라믹으로 분리막 표면을 코팅해 고온을 견뎌내며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 기술은 미래 영역으로 여겨지던 전기차 시대를 바짝 앞당겼다. LG화학은 2000년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낮은 수율로 애를 먹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의 SRS 적용으로 한 자릿수 수율을 96%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용 배터리 생산을 전담하는 쾌거를 이룬다. 전 세계 모든 전기차가 현재 SRS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로 움직이고 있을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력은 독보적이다.

2009년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인 GM 쉐보레 볼트에 공급하는 LG화학 배터리.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BMS 특허 8000개 '세계 1위'…전기차 1대당 300弗 추가 수익


LG에너지솔루션(373220) 과천 R&D캠퍼스의 한 연구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로 손바닥 크기만한 녹색 인쇄회로기판(PCB)이 놓여 있었다. 각진 기판 위로는 수많은 칩과 얇은 금속 배선들이 이어져 있어 마치 정교한 지도를 연상하게 했다. PCB는 배터리의 두뇌로 불리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핵심 부품으로 개별 배터리셀에서 수집한 전압과 전류, 온도, 충전 상태(SOC), 수명 상태(SOH) 등 데이터를 분석해 배터리 성능과 안전성을 최적화하는 역할을 한다.

BMS 개발 실무를 총괄하는 이상훈 LG에너지솔루션 BMS BDI 담당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배터리팩에 BMS를 부착해 패키지로 공급하면 전기차 한 대당 200~300달러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BMS는 배터리 열 폭주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감지·예방하는 것을 넘어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배터리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연장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지하 1층으로는 높이 약 2m의 챔버들이 가득 채워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챔버 내부에는 최대 네 개의 전기차 배터리팩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해당 배터리는 끊임 없는 충·방전 테스트를 거치며 성능·안전성을 검증받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연구개발 담당자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배터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고객사의 요구를 신속하게 충족하기 위해 챔버를 하루 24시간 가동하며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훈(사진) LG에너지솔루션 BMS BDI 담당이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LG에너지솔루션 BMS 개발 현황과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 시절인 2005년부터 BMS 연구개발에 집중해왔고 지난해 말까지 8000건 넘는 관련 기술 특허를 확보했다. 특허 보유 건수는 전 세계에서 단연 1위다.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 등 15곳 이상의 완성차 제조사에 BMS를 탑재한 배터리팩을 공급하며 단순 배터리 제조·판매를 넘어 배터리 안전·성능을 관리하는 서비스 사업으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했다. 전기차 100만 대분 배터리를 공급한다고 가정할 때 BMS로 최대 3억 달러(약 4367억 원)의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BMS 개발 초기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시장 주도권은 일본 업체들이 쥐고 있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의 BMS 개발 인력은 15명 남짓으로 세 자릿수 규모의 일본 업체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이 담당은 신입사원 시절이던 2004년을 떠올리며 “도요타는 이미 하이브리드차용 BMS를 개발했고 소니와 혼다도 발 빠르게 기술을 개발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며 “그때는 일본 업체에서 근무한 전문가를 고문으로 영입해 선진 기술을 전수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2010년대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 차별화’를 앞세워 일본 업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기존 BMS가 전기차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이상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수준이라면 LG에너지솔루션은 방대한 데이터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배터리 수명을 예측하고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충전·방전 전략까지 제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현재 축적해놓은 배터리 데이터는 45테라바이트(TB) 규모로 500쪽짜리 책 4500만 권 분량에 해당한다. BMS 개발 인력도 현재 450명으로 20년 전보다 30배 가까이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목표는 배터리 탑재부터 충전, 탈거,재활용 등에 이르는 전체 생애주기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 리스 사업자를 대상으로 배터리 잔존 가치를 평가하고 향후 최상의 상태로 처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 있다. 사업자는 이를 통해 중고 전기차의 값을 좌우하는 배터리 성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처분에 따른 손실을 줄여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이 담당은 “전기차 리스·렌탈 사업자, 중고차 딜러, 최종 소비자에게 배터리 가치를 평가·인증하고 배터리 퇴화를 늦추는 등 고객 중심의 가치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며 "순환경제의 흐름에서 재제조 또는 재활용이 가능한 폐배터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분류하는 분야에서도 사업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율주행차·소프트웨어중심차(SDV)·도심항공교통(UAM) 등 배터리로 구동하는 미래 교통 수단에서도 BMS 활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기술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BMS 시장은 올해 68억 달러(약 9조 277억 원)에서 2035년 220억 달러(약 30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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