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 LG화학에서 분할된 LG에너지솔루션은 출범 후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달려왔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배터리 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세계 전기차 시장의 태동을 만들며 핵심 부품인 배터리 기술력을 선도할 기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1995년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LG화학 전지사업본부는 얼마 안 돼 연간 2000억 원의 적자를 내며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에 휩싸였다. 일본에 한참 뒤진 기술에 “그만 사업을 접자”는 임원들이 많았지만 일찌감치 2차전지를 미래 먹거리로 눈여겨본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 회장은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퍼스트 무버’가 되겠다는 야심을 꺾지 않았다. 선대 회장이 “결코 포기는 없다. 길게 보고 끈질기게 연구하면 반드시 성과가 날 것”이라고 독려하자 연구진도 밤낮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해 2004년 배터리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을 독자 개발했고, 2009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배터리를 제너럴모터스(GM)에 독점 공급하는 쾌거를 이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후 세계 10대 완성차 업체 중 9곳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SRS 개발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학과 교수는 “K배터리가 글로벌 강자로 자리 잡은 것은 미래를 내다본 리더의 비전과 확고한 의지, 수많은 실패에도 도전한 연구진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덮친 LG에너지솔루션은 30년 전의 초심을 잊지 않으며 새해 기술 심장부인 경기도 과천 R&D캠퍼스의 대규모 증축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서울경제신문이 직접 찾은 과천 R&D캠퍼스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차세대 배터리와 배터리관리시스템(BMS) 개발에 이어 배터리 소재로 연구개발(R&D)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을 처음 목격할 수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R&D 투자가 2023년 첫 1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캐즘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에도 R&D 투자를 1조 1000억 원으로 늘린 것이 배터리 소재 기술력을 확대하는 발판이 됐다고 한 연구원이 귀띔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했고,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며 3년 후 매출을 66조 원으로 늘리며 다시 ‘퀀텀점프’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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