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콩알금’을 사 모으고 있는 주부 이 모(53) 씨는 지난 13일에도 어김없이 공동구매에 참여했다가 깜짝 놀랐다. 쇼핑몰 측에서 보통 4시간 동안 ‘공구’를 진행하는데, 이날은 겨우 30분 만에 준비된 물량이 동이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 씨는 “'오픈런'을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구매를 못 할 뻔했다”면서 “금값이 하도 오르길래 평소에 한 돈씩만 사던 걸 다섯 돈으로 늘렸는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미국발 ‘관세 전쟁’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면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이 치솟자 국내 귀금속 시장에서도 신풍속도가 펼쳐지고 있다. ‘금테크’ 광풍이 불면서 저중량의 ‘콩알금’까지 투자 열기가 확산하는가 하면, 지갑 얇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선 비교적 저렴한 10K 반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16일 귀금속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콩알금을 찾는 소비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골드젬’ 관계자는 “지난주에 공구를 진행했는데 600건 택배 물량이 6시간만에 마감됐다”고 했다. 김진관 수앤진골드 대표도 “이번달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수준”이라며 “지난해 12월부터 수요가 부쩍 늘더니 이번달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라고 설명했다.
콩알금은 0.5에서 한 돈(3.75g) 사이의 저중량 금을 뜻한다. 크기가 작은 만큼 가격 부담이 적고, 주로 온라인으로 거래돼 구매가 간편하다는 게 장점이다. 형태도 덩어리 모양의 ‘막금’부터 하트·곰돌이까지 다양하다. 종로 금은방거리에 위치한 대한민국금거래소 관계자는 “투자 목적 구매자가 대다수인 만큼 별도의 세공비가 들지 않는 막금 수요가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당초 콩알금은 2030 세대 사이에서 ‘짠테크(절약+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최근에는 골드바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등 실물 금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더욱 다양한 연령층이 유입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반떼’ 관계자는 “구매자 연령대를 보면 10대부터 70대까지 정말 다양하다”며 “30대가 가장 많긴 하지만 체감상 고르게 분포돼 있다”고 전했다.
순금 함량이 41.6%로 낮은 10K 금 장신구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14K 대비 20%가량 저렴하지만 모양은 비슷하기 때문에 특히 지갑이 얇은 2030 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30대 김 모씨는 “14K 반지나 귀걸이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차선책으로 10K를 찾게 됐다”며 “10K라고 해도 얼마 전 14K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10K 쥬얼리는 과거 2011년 금값 폭등 사태에도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 바 있다. 다만 금 함유량이 낮은 만큼 되팔 때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금값이 진정된 후에는 줄곧 외면받아 왔다.
서울의 한 지하상가에서 10년 이상 액세서리를 판매해왔다는 한 상인은 “최근 10K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많이 늘어나 금값이 폭등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며 “10년 전 쯤 한 차례 10K 제품 열풍이 분 이후로 14K가 기준점으로 자리를 잡나 했더니 또 다시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금값은 이달 들어서만 27.9% 올랐다. 국내 투자 열기가 과열되면서 국제 금 가격과의 괴리율도 20% 안팎까지 벌어졌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1~2월 금이 오른 건 진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라기보다는 관세 부과 뉴스로 인한 투기 수요 영향이 컸다고 본다”며 “명목 가격뿐만 아니라 실질 가격도 1980년 역사상 최고치에 이른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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