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조만간 12단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에 돌입해 엔비디아에 납품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보다 앞선 단계인 8단 제품에서 마이크론에 추월당한 삼성전자(005930)는 12단 개발 경쟁에서도 밀릴 가능성이 높아져 위기감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마크 머피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미국 투자 분석회사 울프리서치가 개최한 행사에 참석해 “12단 HBM3E 제품은 경쟁사의 8단 제품보다 전력 소비가 20% 적고 용량은 50% 많다”며 “하반기에는 생산하는 HBM 대부분이 12단 제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제품으로 일반 D램보다 4~5배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인공지능(AI) 칩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거 탑재된다.
지난해 9월 마이크론은 12단 HBM3E 개발을 완료한 뒤 고객사에 시제품을 선보였다. 머피 CFO의 이날 발표는 고객사의 샘플 테스트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조만간 양산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가 말한 고객사는 세계 1위 AI용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다. 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9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얼마나 제품을 공급하는지가 곧 글로벌 HBM 영향력을 의미한다.
마이크론의 약진이 가장 부담스러운 기업은 삼성전자다. D램 시장 1위 회사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마이크론이 통과한 엔비디아의 HBM3E 8단 장벽을 넘지 못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삼성전자는 뒤늦게 8단 제품의 소량 양산 단계 진입에 성공했지만 아직 대량 양산 단계까지 진입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12단 제품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했다. 삼성은 이달 말 12단 HBM 샘플 제품을 엔비디아로 보낼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종 납품 승인을 받으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이 마이크론이 또 한번 12단에서 삼성전자를 앞지를 경우 D램 시장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000660)는 물론 3위 마이크론에 또 한번 역전을 허용하는 셈이다.
머피 CFO는 다음 세대인 6세대 HBM(HBM4) 출하 시기도 내년으로 예고했다. 3위 마이크론의 거센 추격에 반도체 업계의 기술 경쟁은 한층 가열되는 모습이다. 일찌감치 8단과 12단 HBM에서 앞서나간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요구에 맞춰 HBM4 개발을 최대한 앞당겨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전을 모색하는 삼성전자 역시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한 HBM4의 연내 양산을 목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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