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석유 대기업 셰브런이 수익 악화로 내년 말까지 인력의 최대 20%를 감축한다. 앞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으로 지목된 영국 석유 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5%의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글로벌 석유 대기업들이 연초부터 삐걱대는 모양새다.
1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셰브런은 2026년 말까지 전 세계 인력의 최대 5분의 1을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셰브런 전체 직원 수는 4만 6000명(2023년 기준)이다. 이 중 일부를 제외한 감축안을 시행할 경우 약 8000명이 해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성장 촉진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마크 넬슨 셰브런 부사장은 “올해부터 15~20%의 인력 감축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내년 말 이전에 대부분 완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셰브런의 인력 감축은 예상된 수순이다. 앞서 셰브런은 지난해 11월 자산 매각 등을 통해 20억~3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해고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 7억 1500만 달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석유 대기업의 인력 감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BP도 지난달 전 세계 인력의 5% 이상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BP의 경우 전체 9만 명 중 올해 약 4700명이 정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계약직 3000명도 인력 감축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BP는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인베스트먼트가 지분을 사들여 주주가치 제고를 압박할 태세다.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엘리엇의 지분 확대는 BP 입장에서 달가운 일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 기업들의 인력 구조조정은 부진한 회사 실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셰브런의 지난해 순이익은 177억 달러로 전년 대비 17.3% 줄었다. BP 역시 지난해 순이익(89억 달러)이 1년 전보다 약 35.5% 급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는 기름 값에 석유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올려왔다. 하지만 이후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가자 이익이 줄어들고 경영상 압박을 받게 됐다는 진단이다. 반면에 기업들의 효율성이 높아진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석유를 뽑아내는 데 예전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미국의 석유·가스 생산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지만 고용 수준은 지난 10년간 약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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