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인기 고급 웨딩드레스 대여숍인 A사는 드레스 선택을 위한 샘플 착용 비용인 ‘피팅비’를 현금으로만 받았다. 대여 드레스의 브랜드에 따라 차등적으로 발생하는 추가금도 10% 할인을 미끼로 현금결제를 유도했다. 사주일가는 이렇게 받은 현금을 매출에서 누락해 세금을 탈루했고 피부 미용실과 골프 연습장 이용료 등 업무와 관련이 없는 비용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다가 과세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국세청은 고가의 이용료를 현금으로만 받아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결혼·출산·육아교육 업체 46곳을 추려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
구체적인 조사 대상은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스드메) 업체 24개 △산후조리원 12개 △영어유치원 10개 등이다. 국세청은 이들 업체가 젊은 세대에게 과도한 지출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세금은 매출누락, 사업장 쪼개기, 비용 부풀리기 등 각종 수법을 동원해 회피했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46개 업체의 전체 탈루액은 200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조사 대상은 깜깜이 계약과 추가금 폭탄과 같은 불투명한 가격 구조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스드메 업체다. 스드메 시장에서는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가격 횡포가 만연해 있다. 예비부부들은 계약을 하고도 어디에서 추가금 견적서가 날아들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결혼서비스 발전 지원 방안’에 따르면 스드메 비용 520만 원 중 추가금은 174만 원으로 33.4%를 차지한다.
국세청이 조사 대상 업체들이 처음 계약 시 안내한 기본 계약 내용 외의 추가금을 다수의 차명 계좌에 이체하도록 유도한 후 소득 신고를 누락해 자산 증식의 재원으로 유용한 사실을 찾아냈다. 자녀 또는 배우자 명의를 빌려 추가 사업체를 설립한 후 매출액을 두 업체 간에 분산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한 업체도 있었다.
국세청은 공급이 부족한 상황을 이용해 출산 비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산후조리원에도 칼을 빼들었다. 조사 대상자들은 현금영수증 의무 발생 사업자임에도 고객에게 현금영수증 미발급을 조건으로 현금 할인가를 제시하는 비정상적인 영업을 벌여왔다. 일부 업체는 매출 누락과 비용 부풀리기로 손실이 발생한 것처럼 신고하고도 고가의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본인 건물에 산후조리원을 입점시킨 뒤 시세를 초과하는 임대료를 받아 해외여행 및 사치품 구입에 사용한 사실이 들통났다.
영어유치원 및 영어학원 10곳도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조사 대상자들은 수강료 외의 교재비, 방과후 학습비, 재료비 등을 현금으로 받은 후 이를 신고하지 않고 자녀들의 해외 유학 비용으로 사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체가 없는 교재 판매 업체나 컨설팅 업체를 가족 명의로 설립한 후 위장 업체로부터 교재 등을 매입한 것처럼 가장해 허위의 비용을 발생시켜 세금을 축소 신고한 의혹도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비상정적인 현금결제 유도와 비용 부풀리기 등 부조리한 관행을 면밀히 점검할 계획이다. 가족을 비롯한 관련인의 재산 형성 과정도 꼼꼼히 따지고 현금연수증을 미발금한 사례가 확인될 경우 20%의 가산세도 부과할 예정이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탈루 혐의 관련 거래의 금융 추적과 이중장부 확인, 거짓 증빙에 대한 문서 감정 등을 통해 불투명한 수익 구조와 자금 유출 과정을 낱낱이 확인할 것”이라며 “조세 범칙 행위 적발 시 조세처벌법에 따라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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