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98일째인 2022년 6월 2일, 미국의 기업인 알렉스 카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통령궁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의 인공지능(AI) 기업 ‘팰런티어테크놀로지’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카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파격적 제안을 했다. 군사용 AI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과 정부 기관들은 곧바로 팰런티어 AI 시스템 ‘고담’ 등을 구축했다. 고담은 저궤도 위성 수백 대와 정찰 드론, 레이더, 사이버망을 총동원해 순식간에 방대한 첩보들을 수집·종합하고 전장 상황을 분석해 군사작전까지 짜줬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바꾼 주역인 카프는 196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땄지만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조부의 유산을 종잣돈으로 자산관리 회사 ‘캐드먼그룹’을 세워 투자자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퍼드대 동문이자 전자 결제 기업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과 인연을 맺었다. 틸은 2001년 9·11 테러에 충격을 받아 국가 안보를 위한 기술을 개발할 회사를 차리려 했다. 카프는 그와 의기투합해 2003년 팰런티어를 공동 창업했다. 사업 방향은 틸이 그렸고, 경영은 카프가 맡았다.
카프의 리더십 아래 팰런티어는 급성장했다. 창업 초기 5000만 달러 미만이었던 팰런티어의 기업가치는 2020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지속 상승해 올 2월 7일 2533억 달러대에 이르렀다. 성장 비결은 ‘국방 전문 AI’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범정부적 지원을 받은 것이다. 특히 2005년 미 중앙정보국(CIA) 산하 벤처캐피털 ‘인큐텔’의 자금을 수혈받았다. 미 국방부를 비롯한 여러 행정기관들과도 계약을 맺고 예산을 따냈다. 우리도 국방을 비롯해 의료·금융·법률·물류·공장자동화 등에서 급성장하는 전문 분야 AI 사업을 틈새시장으로 선점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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