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난 후 암 수술 자체는 대폭 줄었으나 의료의 질은 유지되고 있다는 국내 의료진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의료의 질이 유지되긴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유문원 서울아산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연구팀은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전후 이 병원에서 수술 받은 위암 환자의 합병증 발생률 등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대한외과학회지(Annals of Surgical Treatment and Research)'에 발표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한 작년 2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받은 위암 환자 31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다. 연구팀은 이들의 수술 후 합병증을 의료대란 이전인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같은 기간 동안 이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와 비교했다. 이 기간 수술받은 위암 환자는 218명으로, 연평균 73명 수준이었다.
단순 비교할 경우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 수는 연간 73명에서 31명으로 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시간은 164.5분에서 154.0분으로 단축됐다.
수술 후 합병증 발생률은 전공의 집단사직 이전에 22.02%(218명 중 48명), 이후 9.68%(31명 중 3명)로 집계됐으나 합병증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을 반영해 분석한 결과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영향이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연구팀은 "의료 위기로 수술은 감소했으나 수술 후 합병증 발생률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평균 3건이었던 위암 수술이 1∼2건으로 줄면서 의료진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전공의 교육이 사라지면서 전체 수술 시간이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추정이다. 연구가 수행된 기간이 전공의들의 병원을 떠난 직후라 현장 의료진들의 여력이 남아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의료진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정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그로 인한 치료 공백을 체감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유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남아있는 의료진의 헌신으로 당장 의료의 질은 유지됐지만 지속 가능한지는 의문"이라며 "더욱이 수술 건수가 대폭 줄면서 완치할 수 있는 환자가 (적시를 놓쳐) 완치가 어려워지거나 한 상황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현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의료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버티더라도 우리 의료시스템이 밑동부터 무너지고 있다"며 "새로 의사를 배출하고 교육해야 하는데,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누가 수술을 하겠느냐.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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