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대항마로 꼽히는 AMD가 예상을 하회하는 인공지능(AI) 칩셋 실적을 보고하며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딥시크 쇼크’로 AI 가속기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엔비디아 ‘블랙웰’ 수요가 최대 40%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반도체 시장을 이끌어온 주요 빅테크의 기세가 꺾인 와중 자동차 등 산업용 반도체 업계는 미국 발 ‘관세 전쟁’ 공포에 떨고 있다.
4일(현지 시간) AMD는 지난해 4분기 매출 76억6000만 달러, 주당순이익 1.09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과 주당순이익은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월가 평균 예상치 75억3000만 달러와 1.08달러를 소폭 상회한다.
호실적에도 시외 주가는 8.84% 폭락했다. 성장 동력으로 꼽히던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이 부진했던 탓이다. 지난해 4분기 AMD는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매출 38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69% 늘어난 수치지만 월가가 예상하던 41억4000만 달러는 하회한다.
블룸버그는 “딥시크의 등장으로 AI 하드웨어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는 와중 AMD가 AI 분야에서 동력을 잃었다는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며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인텔 점유율을 뺏어오고 있지만 이 분야는 성장동력이 더디고 게이밍 콘솔용 프로세서는 현재 세대의 수명 주기가 끝나가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딥시크발 AI 비용 효율 개선으로 향후 AI 가속기 수요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AMD가 현 시점에서도 입지를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자 시장이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는 26일 실적을 발표할 예정으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전날 대만 공상시보는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를 인용해 엔비디아 최신 AI 가속기 ‘블랙웰’ NVL72 연간 출하량이 기존 3만~3만5000대에서 2만~2만5000대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기대작인 블랙웰 매출이 최대 43% 줄어들 수 있다는 비관적인 예측이다.
AI 가속기 전망이 어두워지는 와중 반도체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자동차·산업용 칩셋 시장도 분위기가 악화되는 중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대표주자인 유럽 NXP와 인피니언은 각각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9%, 8% 줄었다고 밝혔다. 역시 산업용 반도체 시장 주요 기업인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는 9분기 연속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인피니언 등 일부 기업은 환율 영향으로 올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으나 시장 일각에서는 ‘순진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도입 등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은 전망인 탓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자동차는 물론 전자제품 전반의 수요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반도체는 오랫동안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축이었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