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3년 만에 대만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에 참가한다. 미국, 유럽 전시회에 힘을 쏟아 왔지만 인공지능(AI) 발 혁명으로 대만 산업 생태계가 중요해지자 관련 기업들이 대거 몰리는 이 행사로 저변을 확장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주요 AI 컴퓨팅 관련 반도체를 선보일 뿐만 아니라 현장에 모인 대만 기업은 물론 북미 빅테크와의 접점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5월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 공개 전시장을 차릴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컴퓨텍스 2012에 참가한 뒤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전시에서는 차세대 HBM 제품, 컴퓨터익스프레스링크(CXL) 기술, 프로세싱인메모리(PIM) 기술를 비롯해해 AI 솔루션 등을 선보일 전망이다.
지난해 처음 컴퓨텍스에 참가했던 SK하이닉스도 올해 2년 연속 자사 첨단 AI 반도체를 들고 행사에 나선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메모리, AI의 힘’을 주제로 AI 메모리 솔루션을 전시했다. 특히 엔비디아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납품을 시작한 5세대 HBM(HBM3E)이 이목을 끌었다. 올해는 한발 나아가 올해 중순 시제품이 나올 예정인 차세대 제품인 HBM4를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CES 2025에서는 양산 막바지에 있는 HBM3E 16단 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국내 기업들이 다시 대만 업계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AI 산업의 득세와 맞물려 대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텍스에서는 그동안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등 컴퓨터 주변 부품이나 최신 노트북, PC 등이 주된 볼거리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행사의 정체성을 AI 중심으로 전환하며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행사에서도 슈퍼마이크로컴퓨터터, 콴타컴퓨터, 기가바이트 등 AI 인프라 공급망의 주요 기업들이 전시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 AMD CEO 등 주요 AI 인프라 기업 CEO가 기조강연에 나섰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행사를 지원하는 등 대만은 민관이 합세해 컴퓨텍스를 중심으로 뭉쳐 대만 생태계를 글로벌 AI 산업의 중심으로 띄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13년 만에 컴백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AI 업계의 대스타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조차 대만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자사 칩을 생산해주는 TSMC의 웨이저자 CEO와 동맹을 과시하고 자사 칩으로 서버를 만드는 각종 대만 회사들의 전시장을 친분을 내세우는 등 컴퓨텍스 기간이면 대만 사회와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서버, 메모리, 냉각 시스템 등으로 이어지는 컴퓨터의 밸류체인에서 대만 기업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한편 AI 기술로 인해 글로벌 IT 전시회의 지형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급성장하는 AI 인프라와 직결된 컴퓨텍스 같은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전·IT 디바이스 등이 중심인 CES, IFA 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분산되는 분위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CES의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도 내년 참가를 고심하고 있을 정도로 디바이스 중심의 전시회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며 “IFA는 올해 행사 명도 바꾸고 CES 역시 젠슨 황을 초대하고 AI 영역을 대폭 확장하지만 IT행사 지각변동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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