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로보틱스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2세대를 현대차그룹싱가포르글로벌혁신센터(HMGICS)에서 자동차 생산을 위한 기술 검증에 돌입하는 배경에는 속도가 빨라지는 양산형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경쟁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기계체조가 가능한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이며 앞선 로보틱스 기술을 공개했다.
하지만 실제로 제조 현장에 투입돼 인간을 대체해 작업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역량에 대해서는 시장의 의문이 있었다. 높은 기술 수준만 자랑하는 슈퍼카와 같은 로봇 개발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최대 생산 기지인 국내 공장에 투입하려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고용안정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문제 때문에 개발이 더디다는 지적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인간을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집중하는 세계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와 비교되며 이 같은 의문은 계속됐다. 테슬라는 2021년 ‘에이아이데이(AI DAY)’에서 공장에서 운반 작업을 할 수 있는 옵티머스 계획을 공개했다. 2022년에는 시제품을, 2023년 12월에는 옵티머스 2세대를 선보이며 생산 현장 투입이 임박한 사실을 알렸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2세대 아틀라스를 공개하면서 추격을 예고했다. 2세대 아틀라스는 텀블링과 같은 곡예 대신 관절을 비틀고 몸통을 360도 회전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선보였다. 8월에는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을 공개했고 10월에는 실제로 공장에서 부품을 보관함에 옮기는 작업 영상도 공개했다.
2세대 아틀라스는 머리 부분의 카메라를 활용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반의 비전 시스템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과 물체를 정확히 인식했다. 또 머니퓰레이터(manipulator·로봇 손)를 정교하게 움직이며 엔진 커버 부품을 정확히 집어 부품을 꺼내고 이동식 보관함에 옮겨 넣는 작업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틀라스는 작업 도중 부품 보관함의 위치가 바뀌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자 곧바로 동선을 수정해 수납하는 능력까지 보였다. 아틀라스가 입력된 작업 수행 능력에서 나아가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역량까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자동차 생산 공정에 투입될 시기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말 아틀라스를 실제 생산 공정에 투입하며 성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아틀라스가 시험 검증에 돌입하면 작업 능력도 빠르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전검증 무대로 유력한 싱가포르글로벌혁신센터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팟(SPOT)은 물론 무인운반로봇(AGV), 자율이동로봇(AMR) 등을 활용한 스마트 제조공장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할 수 있는 체계이기 때문에 다양한 작업 학습을 해야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는 최적의 무대다.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 아틀라스가 실제 임무 수행에 돌입하면 돌발 상황과 같은 수많은 실제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다. 특히 현대차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로봇 개발을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아틀라스가 실제 작업 현장에서 습득한 데이터를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플랫폼 ‘아이작’을 활용해 가상 환경에서 학습을 가속하면 임무 수행 능력이 ‘퀀텀점프’할 가능성이 높다.
아틀라스가 현장에 투입되면서 거대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2025년) 1000대 또는 수천 대 이상의 옵티머스 로봇이 테슬라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테슬라는 올해 최소 1000대 이상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 현장에서 일을 한다. BMW도 지난해 7월부터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큐어02를 부품 조립과 운반, 판금 검사 등에 투입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의 지리자동차와 비야디(BYD)도 자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유비테크로보틱스의 ‘워커S(WalkerS)’를 지난해부터 공장에서 실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를 비롯해 테슬라의 옵티머스 등이 작업에 투입되는 목표는 한 가지다. 시장이 연간 100조 원 규모로 커질 휴머노이드 로봇을 자동차처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유비테크로보틱스는 올해 양산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고 테슬라도 2026년부터 옵티머스 로봇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도 이르면 3년, 늦어도 5년 안에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리얼데이터(Real data)가 필요하고 (공장에서) 실증을 통해 기능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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