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미 무역흑자를 줄일 카드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선택한 것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경제 부활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LNG를 원유와 함께 미국의 핵심 수출품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에너지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대미 무역 수지의 균형을 맞추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노선에도 부합하는 미국산 에너지의 수입 확대는 놓칠 수 없는 대책이다. 1990년대 맺었던 카타르와의 장기 LNG 도입 계약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종료된 것도 호재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자동차·반도체 등 대미 무역흑자가 큰 업종을 중심으로 미 정부의 통상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결국 협상이란 건 큰 틀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것”이라며 “수입선에 변화를 줘 바꿔 미국산 에너지를 대규모로 사들인 뒤 우리도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LNG와 원유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는 트럼프 집권 1기 시절에도 효과를 거둔 바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트럼프 1기 직전인 2016년만 해도 미국산 LNG와 원유가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2%(30만 1279톤), 0.1%(2만 8146톤)에 불과했다. 하지만 1기 집권 마지막 해인 2021년 미국산 LNG의 수입 비중은 18.5%(847만 7771톤), 미국 원유 수입 비중은 12.1%(1562만 6223톤)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12.2%)은 호주(24.6%), 카타르(19.2%), 말레이시아(13.2%)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로 많은 천연가스를 수입한 나라다. 원유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전통적인 원유 대량 도입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라크를 제치고 한국의 2대 원유 도입국이 됐다. 전직 통상 고위 관료는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에도 초기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지시하며 한국 자동차에 수입 쿼터 부과를 검토하는 등 강력하게 나왔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큰 틀에서 보면 당시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기 시작한 것이 주효했다”고 되짚었다.
관건은 수입 규모다. 내년까지 카타르와 종료되는 LNG 장기 계약 물량은 연간 702만 톤이다. 지난해 미국산 수입 LNG 톤당 가격(548달러) 적용 시 38억 5145만 달러로 무역흑자의 7% 수준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LNG의 경우 전체 물량에서 미국산 비중이 10%대인데 더 올릴 여력이 충분하다”며 “중동의 경우 LNG 가격 변동성이 너무 컸는데 미국산으로 바꾸면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통상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최대 카드라고 본다”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278억 달러로 전년 대비 10.5%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미 무역 수지도 557억 달러로 역대 최고다.
미국 서부 해안의 LNG 수출 터미널 공동 건설도 협상 카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산 LNG의 최대 수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문제는 현재 미국의 LNG 수출 터미널이 남부인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LNG선이 파나마운하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입하는 것이 최단 거리지만 대형 선박이 통과하지 못해 아메리카 대륙을 돌아와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 내 파이프라인 건설과 함께 서부 해안이나 알래스카에 수출 터미널이 생기면 대규모 수입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미국의 이익과도 맞아떨어진다.
한일 양국이 대규모 장기 계약을 앞세워 트럼프 행정부에 서부 해안의 LNG 터미널 건설을 관철시키거나 3국의 가스 기업들이 공동투자해 터미널을 짓는 방안도 거론된다. 해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산 LNG는 북미의 천연가스 가격지표인 ‘헨리허브 가격’에 연동돼 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에 유가연동제 방식을 따르는 중동산 LNG보다 더 저렴하다”며 “운송 거리만 줄일 수 있다면 미국산 LNG 수입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려도 이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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