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동차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국 등 수입국에 ‘관세 폭탄’을 예고했었는데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으름장을 놓던 당선인 시절과 달리 중국에는 10%,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고 일단 한국은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더 놀랄 일은 트럼프 대통령 가족들이 2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위해 워싱턴DC로 가는 공군기에 탑승하기 전에 벌어졌습니다. 탑승할 공군기 앞에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V80 등장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현대차·기아 정말 탄탄대로를 가는 걸까요.
트럼프 행정부의 어떤 정책이 문제야?
간단합니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문제입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합산 매출액 280조 원을 돌파하며 3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더해 하이브리드차(HEV) 판매 호조가 겹치며 실적도 고속 주행 중입니다. 네. 미국 덕 많이 봤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91만 1805대, 기아는 약 79만 6000대를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들 절반이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서 미국으로 보냅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관세 20%를 부과하면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이 최대 19%, 약 5조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SWOT 분석: ①현대차·기아의 강점은 뭐야?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가족이 타는 공군기 앞에 등장한 제네시스를 보고는 “현대차그룹의 대관 조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트럼프 시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 생산을 빠르게 늘리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른바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맞춰 현지 생산을 늘리는 ‘트럼프 시프트’ 입니다.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만든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는 지난해 10월부터 시험 가동 중인데 올해 1분기께 완전히 가동됩니다. 총 30만대를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이 공장이 완전 가동되면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앨러배마(35만대), 기아 조지아(34만대)를 합쳐 미국에서 약 104만대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또 현대차는 메타플랜트의 생산 능력을 50만대까지 늘릴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124만대, 미국 판매량의 약 73%를 현지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SWOT 분석: ②현대차·기아의 약점은 뭐야?
당연히 현지에서 아무리 생산을 늘려도 보편관세 다 피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메타플랜트의 생산량을 50만대까지 증설해도 27%, 약 46만 대의 차는 관세에 노출됩니다. 심지어 이미 노출이 예정된 물량이 있습니다. 바로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차들입니다. 기아는 멕시코 공장에서 만든 약 15만대의 차를 미국으로 수출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기아 미국 판매량의 약 9%에 해당하는 물량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일부터 멕시코에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으니 이 15만대는 관세를 맞게 됩니다.
이 뿐일까요. 멕시코에 대한 관세가 확정되면 현대차그룹의 생산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됩니다. 기아는 전기차(EV) 대중화를 위한 전략모델 소형 SUV EV3를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었습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전기차를 12만3803대를 판매해 테슬라(59만1400대)에 이어 2위를 기록했습니다. 테슬라의 모델3의 포지션인 EV3가 출시되면 판매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에 관세폭탄이 떨어지면 EV3의 생산을 미국에서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인건비 등 제조원가가 비싼 미국에서 만들면 가격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SWOT 분석: ③현대차·기아의 기회는 뭐야?
제네시스가 그냥 트럼프 가족이 타는 비행기 앞에 등장했겠습니까. 현대차·기아가 트럼프 행정부에 관세 폭탄을 맞아도 다른 기업보다 덜 맞는다는 게 그나마 호재라고 할까요.
현대차가 유효타를 맞았다면 경쟁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스텔란티스 등 이른바 ‘디트로이트 3인방’은 트럼프 행정부에 카운터펀치를 맞았습니다. 스텔란티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의 40%를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GM과 포드는 각각 30%, 25%를 멕시코와 캐나다 공장에서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본차들도 크게 맞습니다. 혼다는 2023년 기준 약 29만 대, 도요타는 약 30만 대를 를 캐나다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했습니다. 심지어 도요타는 멕시코에 14억 5000만 달러(약 2조 1000억원)를 투자해 픽업트럭 생산을 늘리겠다는 발표까지 했습니다. 멕시코에 25% 관세 부과가 시행되면 계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차·기아가 경쟁사들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SWOT 분석: ④현대차·기아의 위협은 뭐야?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일까요. 중국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 갑자기 관세율을 10%로 말했습니다. 보편관세 이야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멕시코, 캐나다만 25%의 관세 부과를 통지 받았습니다. 이대로 확정될까요. 1기 트럼프 행정부와 실무협상을 해본 전직 고위공무원은 “트럼프 체면 빨리 세워주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보이진 않지만 각 정부와 기업이 역량을 총동원해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로비와 설득에 나서고 있을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 따라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함께 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로 묶인 하나의 경제권입니다. 협상이 잘 풀려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가 유예되고 대신 다른 나라들을 향해 보편관세(10~20%)가 부과되면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 읽었던 현대차·기아의 강점과 기회는 바로 약점과 위협으로 바뀝니다. 그렇습니다. 올해 현대차·기아의 위협은 최대 시장 미국을 흔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일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차·기의 올해 실적 전망은 어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알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들 올해 현대차·기아의 실적을 보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대차·기아 역시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23일 2024년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도매판매 목표는 7만대 줄어든 417만대로 설정했습니다. 연결 기준 매출액 성장률 목표(3.0∼4.0%)와 영업이익률 목표(7.0∼8.0%)는 작년보다 1%포인트씩 낮췄습니다. 다만 기아는 올해 연간 판매 목표를 전년보다 4.1% 늘어난 321만6000대, 매출 목표도 4.7% 늘려 잡았습니다.
역시 시장에서 올해 현대차가 지난해(약 175조원)보다 8조원 가량 늘어난 183조원의 매출액에 영업이익은 14조 7000억원으로 지난해와 유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기아는 전년보다 약 3조원 늘어난 매출 110조원에 영업이익은 12조 20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와 거의 같을 것이라고 예측입니다.
시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변덕이 심하니 예측하기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죠. 트럼프의 입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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