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으로 세계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이 20일 푸티지 시사회를 통해 작품의 일부가 공개됐다. ‘미키17’은 수 차례 개봉 일정을 연기한 끝에 오는 2월28일 개봉을 확정 지은 데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하고 천만 관객을 모은 ‘기생충’ 이후 봉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인 까닭에 국내 관객들에게는 특히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매번 ‘인생작'을 경신한 봉 감독은 이번에도 전작들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연출력을 발휘했다.
단 17분 정도만 공개됐지만 쓸쓸하고 처연한 슬픔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라는 ‘봉준호의 세계관’이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봉 감독은 위트와 풍자로 우리 사회의 계급 의식을 통찰하는 사회성 짙은 작품을 대중적인 눈높이와 감수성에 맞춘 연출로 평단과 대중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 ‘봉준호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또 다른 감수성은 바로 등장 인물을 비롯해 그가 그려내는 대상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다. 그 애틋한 시선에는 처연한 대상에 대한 애정과 쓸쓸함이라는 정서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17분 동안 공개된 영상에서 주인공 미키는 수 차례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너무 간단한데 ‘프린팅' 돼 부활한다. 그동안 복제인간이 다시 탄생하는 복잡한 단계도 없다. 미키는 복사기에서 복사되는 복사물로 너무나 쉽게 다시 태어나고, 죽고 버려질 때역시 어떤 의식이나 감정이 제거됐다.
미국 소설 ‘미키7’이 원작인 ‘미키17’은 원작과 달리 주인공 미키가 17번 죽는다. 원작보다 10번이나 더 죽는 셈이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7번으로는 부족해서 17번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그는 원작에서는 미키가 역사학자이지만 사채까지 써서 마카롱 가게를 열였다가 망한 자영업자로 설정한 이유는 워킹 클래스에 더욱 가깝게 그리리 위해서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인간 냄새, 땀 냄새, 심지어 ‘발냄새 나는 SF’라고 할 정도로 인간 냄새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키가 10번 더 죽을 수 밖에 없는 비정한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워너브라더스가 공개한 예고 영상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배경음악은 특히 쓸쓸하고 처연함의 정서를 배가하고 완성하고 마침내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지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배경음악이 덧붙여진 푸티지 영상에서 이 같은 정서와 감수성이 왜 느껴졌을까 하는 의문은 이날 푸티지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풀렸다. 봉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감독 인생 25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 이야기’, 멜로를 선보였다고 ‘깜짝 공개’했다. 사랑, 멜로가 영화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지, 봉 감독 특유의 위트가 넘치는 사회, 정치 풍자는 그의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어떻게 그려질지 개봉일까지 상상력을 발휘해 기다리는 기쁨과 설렘은 아마도 ‘고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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